‘영하 4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추위라고 하지 않는다’는 연해주. 그러나 이 동토가 기회의 땅인 사람들이 있다. 고조선과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으며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의 무대였던 러시아 연해주로 흩어진 한민족을 불러모으는 작업이 시작됐다.
‘고려_러시아 연해주농업개발협력지구 수립 추진 협의회’(02-723-0556) 창립 총회가 15일 오전 10시30분 서울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 개최된다. 연해주에 고려인 자치주를 세우기 위한 전 단계 작업이다.
공동 발기인인 유진각 두만강연해주개발 사장은 14일 기자와 만나 "최근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우선 자치구 형태인 농업개발협력지구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면서 "러시아 정부는 연해주의 쇠락을 막기 위해 한인들의 이주를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에 새로운 행정구역을 만든다는 조심스러운 제안이지만 의미는 크다. 협의회에는 이병화 국제농업개발원 원장, 이경원 대진대 교수, 백은기 민족통일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 등 농업계·학계·재계 인사 65명이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회원을 모집한다.
1923년만 해도 소련 거주 한인이 25만 명이 넘었고 연해주에는 한인학교가 380개나 있었을 정도로 러시아는 활발한 정착지였다. 그런데 1937년 스탈린이 이곳을 자기 뜻대로 통치하기 위해 한인만을 골라 17만 명을 야간열차에 태워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내몰았다.
그렇게 쫓겨나 현재 러시아 및 소련 붕괴 후 독립한 주변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고려인 수는 55만 명이나 된다. 93년 옐친 대통령은 스탈린의 과오를 사과하고 고려인이 돌아와 한곳에 모여 살 수 있도록 군대가 철수한 지역을 영구 무상임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때 약속받은 정착의 꿈이 10여 년 만에 첫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러시아에서 자치주를 설립하려면 같은 민족이 3만 명 이상 일정 지역에 모여 살아야 한다. 현재 러시아에는 2개의 자치주와 9개의 자치구가 있는데 유 사장 등이 추진하는 농업개발협력지구는 자치구 단위다.
"유대인들도 자치구로 출발해 1934년 유대인 자치주를 수립했다. 우리도 우선 자치구를 만들고 향후 3년 동안 3만 명까지 확보해 고려인 자치주를 세우는 게 목표"라고 유 사장은 말한다. "남한의 1.6배나 되는 넓이에 풍부한 천연자원과 비옥한 농토는 우리 민족에게 ‘기회’이고 ‘희망’이다."
곳곳에 흩어진 고려인 뿐 아니라 농사를 짓고 싶어하는 한국 농민, 탈북자, 베트남의 한국인 2세 라이따이한, 연해주 진출을 꿈꾸는 사업가와 자원봉사자 등도 유치할 계획이다. 유 사장은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을 대륙으로 넓혀나갈 수 있는 돌파구가 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사진= 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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