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정치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선거 때만 되면 기가 막히게 공안 사건이 터진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중부지역당 사건이다. 한국 정치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기억 나지 않겠지만 노태우 정권은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부 친북 세력이 북한과 연계되어 북한 조선노동당의 강원·충청 지부인 중부지역당이라는 지하당 조직을 만들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사건은 그 동안 조작 의혹을 받아왔고 최근의 과거사 진상 규명 움직임과 관련해 사건 관계자들이 당시 국가정보원에서 수사를 지휘했던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에게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서 쟁점이 되고 있다. 그리고 국가정보원이 새로운 변신을 위한 과거사 진상 규명 작업의 일환으로 이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중부지역당이 부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지하당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이번의 중부지역당, 즉 제 2차 중부지역당은 지하당이 아니라 충청권을 중심으로 한 합법적인 지역당이다.
구체적으로 심대평 충남 지사와 염홍철 대전 시장이 자민련과 한나라당을 각각 탈당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중부지역당, 다시 말해 중부 지역 보수 신당 건설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물론 이들은 탈당 이유를 신행정도시 건설에 매진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중부권 신당을 기대하는 여론이 있다"느니 "행정수도 건설을 위해 지역의 결속력을 갖춘 결사체가 필요하다"느니 하는 심 지사의 발언처럼 이들의 탈당 목적이 중부지역당 건설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이는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인 희극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신행정도시 건설에 매진하기 위해서라면 거기 올인 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에 들어가면 될 일이지, 왜 신당은 만드는 것인가? 주목할 것은 이들 신당 추진 세력이 주로 충청 지역 지방자치단체장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내년에 지방자치선거가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즉, 지역의 분위기상 그 동안 속해 있던 자민련이나 한나라당으로는 내년 선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 같고, 그렇다고 열린우리당에 가기에는 이념적으로도 껄끄러울 뿐 아니라 열린우리당이 자리를 준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 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신행정도시 건설을 명분으로 중부 지역당을 만들어 또 한 차례 지역주의 바람을 일으켜 선거에 임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이 성공할 경우 자신들이 포스트 JP(김종필) 시대의 충청권의 대표주자가 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또 지방자치선거 이후에는 대선 국면에 따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민주당, 자민련과 같은 군소 정당에 대한 통합 노력을 기울일 것이므로 그 때 당선된 자리를 가지고 제대로 된 몸값을 받고 정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3김 시대가 끝난 상황에서 아직도 지역주의에 기대려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판받아 마땅할 뿐만 아니라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물론 지난 2002년 대선, 그리고 2004년 총선이 보여 주듯이 3김 퇴진 이후에도 지역주의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신행정도시 건설이라는 열린우리당의 충청권 구애 전략과 관련해 충청 주민들은 이제는 낡은 지역감정이 아니라 현실적인 경제적 이익에 기초해 열린우리당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즉 실리적 지역주의가 "우리가 남이가" 식의 원초적, 정서적 지역주의를 누를 가능성이 높다. 사실 2004년 총선에서 보여준 충청권에서의 자민련의 쇠퇴가 이미 이 같은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낡은 3김식 수법이 그대로 통하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992년에 중부지역당이 시대착오적인 것이었다면, 2005년에 제 2차 중부지역당이 시대착오적이기는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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