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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달라진다] (5·끝) 가까워진 문화예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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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달라진다] (5·끝) 가까워진 문화예술공간

입력
2005.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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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1일 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고국에서 한 해를 마무리한 송년무대가 열린 곳은 서울 노원구 노원문화예술회관이었다. 국내 독창회는 1년에 한 두 번 열까말까 한데다 공연장 선택도 까다로운 조수미가 ‘동네무대’에 섰다는 것 자체가 뉴스였다. 이날 노원문화예술회관의 좌석(616석)을 모두 채우고도 모자라 통로에까지 들어찬 관객들은 2시간동안 그의 열창에 흠뻑 빠져들었다.

서울에 공연장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지금까지 멀고 높아만 보이던 문화예술공연은 이제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가까이에서 언제든지 향유할 수 있는 일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서울에는 2000년 이후 관악문화관, 노원문예회관, 서울열린극장 창동이 잇달아 생겨났다. 서울과 가까운 경기 고양시 일산구에는 대규모 종합문화예술기관인 덕양어울림누리가 창립했다.

올해도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이 25일 문을 여는 데 이어 강서구민회관 내 소공연장(4월) 광진구 광진문예회관(5월) 경기 성남문화예술의전당(10월)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또한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한강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와 남산 한옥마을 국악공연장을 비롯해 일산 지역 두번째 종합공연장인 일산아람누리, 구로문예회관, 강동문예회관 등도 건립이 추진 중이다. 삼성동 무역센터에는 ‘난타’ 전용 공연장, 용산구에는 대중가요 전용 콘서트홀이 들어설 예정이다.

한강시민공원 망원·잠원·뚝섬지구에도 각각 지상3층 500석 규모의 문화공연장이 설치될 예정이라 시민들이 물놀이와 한강 조망을 즐기면서 문화예술도 접할 수 있게 됐다. 용산구 한남동 옛 한남면허시험장, 어린이대공원, 은평구 국립보건원 자리도 공연장 부지로 거론되고 있으며, 서울시는 문화소외지역에 생활권별로 300석 규모 내외의 소공연장을 만든다고 하니 5년 내에 서울에는 무려 20여개나 되는 공연장이 새로 생겨날 전망이다.

한강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와 덕양어울림누리는 부지매입비와 체육시설비 등을 포함해 각각 2,500억원, 2,240억원의 초대형 프로젝트이다. 일산아람누리는 1,300억원, 성남문화예술의전당은 1,700억원, 충무아트홀은 1,000억원, 광진문예회관과 노원문예회관도 각각 300억원 내외의 예산이 투입됐다.

서울시의 목표는 25개 구 별로 최소한 한 개의 공연장을 갖추는 것. 그동안 공연장이 많이 늘어났다지만 인구 10만명당 공연장 수가 1.24개로 파리(5.88개)나 뮌헨(4.52개)에 비하면 크게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권영규 서울시 문화국장은 "우리나라 공연문화 1세대와 2세대에게는 각각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이 중심이었다"면서 "이제는 지역별 문화거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역별로 공연기반시설을 갖춤으로써 문화소외계층들에게도 문화 향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공연계에서는 이처럼 공연장 건립이 갑자기 늘어나고 있는 것을 환영하면서도 그 운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공연단체 관계자는 "공연장 시설 확충에 앞서 인력, 예산, 프로그램에 대한 대책을 먼저 세워야 한다"면서 "공공 공연장들은 예술의전당 등 대형 공연장을 모방하기보다는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일종의 문화센터로 차별화하는 방안도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중구 충무아트홀은 전문성 확보를 위해 아예 구 단위의 문화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재단이사장을 맡은 성낙합 중구청장은 "큰 돈을 들여 이름난 외국 공연단체를 불러오는 것보다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예술가들의 진면목을 충무아트홀을 통해 보여줄 생각"이라면서 "뜻을 함께 하는 공연장이나 기획사, 축제단체들과의 공동초청·제작을 통해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계 인사들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장르별 전문기관과 지역에 거점을 둔 공연장들이 상호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 장영주· 런던필 등 공연 줄이어

서울과 수도권 각 자치단체의 공연장들이 마련한 프로그램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이다. 마음 크게 먹고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 나들이를 해야 볼 수 있었던 유명 단체나 스타 공연자들의 무대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25일 개관페스티벌 공연으로 막을 올리는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은 5월에 브로드웨이 탱고댄스팀 ‘포에버탱고’의 공연과 브로드웨이 뮤지컬 ‘그리스’를 선보이는 등 각종 국내외 인기작을 무대에 올린다.

노원문예회관의 프로그램도 화려하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4월) 프라하 심포니오케스트라(7월) 나나 무스크리(10월) 키예프발레단(11월) 파리나무십자가소년합창단(12월) 등 화제의 공연이 계속 이어진다.

10월 14일 개관하는 성남문화예술의전당은 개관기념 공연으로 런던필과 장영주의 협연, 백건우와 부다페스트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확정했다.

서울 광진문예회관은 5월 개관기념으로 소프라노 조수미 공연을 추진중이고, 유니버설발레단 공연과 어린이클래식 콘서트 등도 준비하고 있다. 일산 덕양어울림누리에서는 체코국립인형극장의 ‘돈 죠반니’와 브로드웨이 광대극 ‘아가붐’(이상 5월) 알반 베르그 현악4중주단 공연(8월) 등이 예정돼 있다.

최진환기자

■ 기고/ 늘어난 공연장 ‘특화’에 성패 달려

지난해 봄 한강 한복판의 잊혀진 섬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짓는다는 계획이 알려졌을 때 전문가들의 반응은 "생뚱맞다"는 것이었다. 물론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사업 자체에는 여러 가지 미덕이 있다. 딱히 국제적인 상징을 내세울 게 없는 거대도시 서울로서는 잘만 하면 근사한 랜드마크 하나를 갖게 된다. 오페라하우스는 지역주민들의 문화향수 욕구에 부응해야 하는 지역밀착형 공간이 아니다. 서울의 명소로서 차별화되고 그럴듯한 임무가 따로 있는 것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공연장 분포는 해외의 주요 도시와 비교해봐도 그리 빈약하지 않다. 인구비교로 본 공연장 수는 도쿄 모스크바 뉴욕 등보다 앞섰고, 면적대비로는 조사된 30여개의 세계 주요도시 중에서 파리, 스톡홀름에 이어 세번째로 촘촘한 도시3로 꼽혔다. 놀라운 일이다. 시민들은 주변에 공연장이 없다고 불만이고 공연하는 사람들은 공연할 공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데 우리 수준이 세계적으로도 손색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주변에 크고 작은 문화공간이 짧은 기간동안 부쩍 늘었다. 문화예술의 효용과 중요성이 자리를 잡는 과정의 첫 단계는 대부분 하드웨어의 확충으로 시작한다. 소위 문화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도 공통적으로 밟고 지나간 길이다. 바람직하기로는 극장이라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나란히 확충되고 채워지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면 적지 않은 공간이 들어섰는데도 시민이나 예술가들이 여전히 배가 고픈 것은 공연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공간들이 ‘쓸만한 공연장’ ‘가고 싶은 공연장’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공간들이 비슷비슷한 부실에 빠지는 첫번째 공통 과오는 운영을 고려하지 않는 단순한 건물 건립이다. 사용자인 관객과 예술가를 적극적으로 생각하지 않은 경우가 널려있다. 공연장을 어떻게 특화하고 운영할지 지금부터라도 고민해야 한다. 귀찮고 시간이 걸리는 이 과정이 든든한 밑천이 된다. 이미 운영중인 극장들은 각각의 임무가 무엇인가 하는 소박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상에 똑같은 극장은 없다. 나름대로의 임무와 존재이유가 있으며 이를 명확히 하는 순간 많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이런 바탕 위에서 극장은 역할을 분담하고 협업한다. 특히 공간 운영의 전문성과 프로그램은 개별 공간의 노력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노들섬 오페라하우스가 계획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을지 초조하게 지켜본다. 건물만으로는 랜드마크가 될 수 없다.

이승엽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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