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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대한출판문화협회 박맹호 신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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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대한출판문화협회 박맹호 신임회장

입력
2005.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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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계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출판불황이야 당장 힘겹더라도 경기를 탓하면 그만이다. 정보기술의 발전과 함께 영상문화나 인터넷이 출판의 오랜 영토를 이미 상당 부분 잠식했다. 수많은 '독자'들이 이제는 '시청자'나 '네티즌'으로 문화를 향유한다.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근본적으로 출판의 정체성마저 모호해지는 형편이다. 하지만 국내 출판계로 보자면 악재만 가득한 건 아니다. 한국은 올해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도서전이라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으로 우리 출판문화를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2008년 국제출판협회(IPA) 총회 유치 역시 출판을 비롯한 우리문화 전반을 소개할 호기다. 최근 임기 3년의 제45대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회장에 선출된 박맹호(71) 민음사 회장의 어깨가 그래서 더욱 무겁다. 1966년 문학전문출판사로 민음사를 설립해 거의 40년만에 이 출판사를 비룡소(어린이책), 황금가지(대중문화서), 사이언스북스(과학책) 등 계열사를 거느린 단행본 출판그룹으로 키워낸 그의 역량과 연륜이 출판계 화합은 물론 출판 기반조성이나 진흥 등 좀 더 큰 무대에서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가 크다. 출협 부회장 및 이사진 구성에 바쁜 박 회장을 서울 종로구 사간동 출판문화회관 회의실에서 만났다.

대담 이대현 문화부장

-오래 출판계에 계시면서 굳이 ‘지금’ 출협 회장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습니까.

"젊은 후배 출판인들의 간곡한 요청을 받고 어떻게 든 피해 보려고 도망다니다가 나섰습니다만 실은 우리 출판계의 문제를 개선해야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출판의 사회적 위상이나 출판이 국가에 어떻게 공헌해왔고, 또 공헌할 수 있는지 알릴 필요가 있는데 그 동안 출협이 그런 역할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출판은 문화의 인프라, 또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정신적 인프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사회간접자본에 조 단위의 돈을 투자하면서도 해마다 출판산업에 쓰는 돈은 100억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도로 하나 놓는 데도 1,000억원 이상을 써야 하는데, 그만한 돈을 출판에 투자한다면 우리 문화를 성숙시키는 파급효과가 클 겁니다."

박 회장은 꼭 20년 전이던 전두환 정권 말기 출판자유를 위한 저항의 의미로 출협 회장 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었다. 당시 50대 초반으로 40~50대의 출판인 모임인 수요회에 참여하던 그는 선거 중에는 물론이고, 고배를 마신 뒤에도 정권의 감시와 조사를 받는 등 아픈 경험을 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는 어떻게 준비하고 계십니까. 범 출판계 차원에서 행사를 치러내자면 국내 출판인들의 화합이 선결과제일 텐데요. 예산문제도 있고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는 이미 주빈국 조직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짜놓은 레일 위에서 질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출판계의 화합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대화하고, 상대를 이해하고, 또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출판을 오래 하다 보니 출판인들을 많이 알고, 그래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단합된 위에서 일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지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준비에 쓸 정부 예산 중에서는 출판계 행사 몫으로 배정된 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출협이 맡아야 할 한국관 준비정도는 출판계가 돈을 모아 해결할 생각입니다. 가능한 경제적으로 할 계획이지만 최소로 잡아도 17억원 정도는 든다는 계산이 나오니, 출판계 모두의 힘을 모아야지요."

-우리도 국제 도서전을 열고 있는데, 좀더 보완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요.

"어디든 도서전은 대개 견본시장입니다. 저작물을 마케팅하는 자리라는 뜻이지요. 그런 점에서 독일 정부까지 나서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매년 한국에서 사가는 저작권 액수만 1,000만 달러에 이르니까요. 부럽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굳이 우리가 해외의 유수한 도서전에 가 저작권 사오는 데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우리 도서전을 키워 우리 출판문화도 소개하고 그네들이 이곳에 와서 자기들의 저작권을 팔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한국과 중국, 일본이 ‘베세토(베이징 서울 도쿄) 국제도서전’ 식으로 동북아 국제도서전을 좀 거창하게 열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 같습니다. 서울과 베이징, 도쿄로 돌아가며 도서전을 열어 당당히 ‘와서 사가라’고 하는 겁니다. 베이징국제도서전은 인기가 있습니다마는, 도쿄국제도서전은 해가 갈수록 쇠퇴하는 느낌이고 서울국제도서전은 성격이 모호하니 ‘붐업’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관광산업에도 적잖은 도움을 줄 수 있고요."

-국내 출판계가 거의 예외 없이 번역물 출판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게 나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해외의 것을 빨리 들여와 빨리 소화해서 그 자양분을 얼른 흡수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우리는 외형으로 근대화한지 불과 30년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화생산품은 숙성을 거쳐야 하고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책의 제작 등 일부 영역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지만, 그런 인프라 구축을 위한 투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거고요."

-그러고 보니 한때 활발했던 대기업의 학술도서 지원사업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기업주의 철학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사재 몇 백 억원, 지금으로 따지면 몇 천 억원을 투자해 대우학술총서를 발행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대기업들이 구색 맞추기 식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출연해야 합니다. 솔직히 삼성이나 현대가 그렇게 해야 할 단계라고 봅니다. 외국에서도 기초과학도서나 사회과학도서는 대부분 공익재단이나 정부 지원 없이는 안 나옵니다. 왜 못 나오느냐 하면 그 책을 만들어 가지고는 직원의 생계 문제가 해결이 안 되거든요."

-그런 점에서 출협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요.

"출협은 그 동안 친목단체로 운영해왔다고도 볼 수 있는데, 출협은 출판정책이라든지 문화의 최전선에서 ‘싱크 탱크’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를 내야 하고요. 출협은 변모해야 하고, 그것이 제가 회장을 맡으려고 나선 이유의 하나입니다."

-책을 안 보는 인구가 자꾸 느는 것도 큰 문제인데요.

"민족문화의 기초체력을 위해서나, 발전을 위해서 꼭 책을 읽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중요한 것은 교육정책입니다. 미국이나 일본만 하더라도 책 읽기로 교육을 시작해 그걸 대학까지 끌고 갑니다. 오피니언 리더, 지식인들이 그런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겁니다. 지금 이런 상태로 감각적으로 아이들을 길러서야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문화의 위기는 바로 나라의 위기로 이어집니다. 과학이든 문학이든 모?0든 발전의 기초는 무엇보다 활자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도 대단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저희도 전력투구할 겁니다. 출협 내에 ‘지식산업 발전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할 계획입니다.

-40년 동안 책을 만들어 오시면서 가장 보람된 일은 무엇입니까.

"문학이 좋아 문학출판으로 시작했는데 한창시절에 ‘오늘의 작가상’을 만들어 젊은 작가 발굴한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요즘은 전업작가들이 꽤 되지만 작가들이 작품만 써서 밥 먹은 게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오늘의 작가상’을 통해 한수산 이문열 강석경 같은 사람들이 작품으로 밥을 먹게 된 게 저로서는 가장 즐거운 기억입니다. 요새는 장편이건 창작집이건 책 한 권 분량만 되면 웬만한 데서 다 책을 내 주지만, 그때는 책 내기가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작가상’의 제일 큰 특전도 수상작을 즉각 책으로 내주는 것이었습니다. 상금은 적지만 인세를 주니까 작가들이 좋아했고, 그 이후로 정비석 박계주 유주현 등의 역사·연애소설이 주도하던 한국 문학계가 이른바 ‘한글 세대’로 물갈이까지 됐습니다."

말소리가 또박또박하고 지침이 없어 건강을 물었더니 의외로 "좋지 않다"는 답이 나왔다. "25년째 하는 등산이나, 1주일에 한 번 정도 골프 즐기는 게 운동이라면 운동인데, 그것도 70이 넘으니까 힘에 부치더라"는 그는 "명색이 출판인인데 저자들과 저녁 회식을 자주 못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후배 출판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렵고 힘들 때는 늘 이게 수업료라고 생각해라,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밀고 나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민음사의 자회사인 황금가지에서 판타지 소설을 낸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마뜩찮게 여겼습니다. 이른바 본격소설류만 출판해온 민음사의 이미지하고도 안 맞았고요. 하지만 거기서 낸 판타지 소설들이 많이 읽혔고, 판타지 소설을 본 사람들이 결국 본격문학의 독자가 된다는 걸 알고는 대중문학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특히 출판은 자신의 생각이나 철학대로 해야 합니다."

정리=김범수기자 bskim@hk.co.kr

■ 프로필

-1934년 충북 보은 출생. 청주고, 서울대 불문과 졸업

-66년 민음사 설립

-74년 ‘오늘의 시인총서’ ‘오늘의 작가총서’ 발간

-76년 계간지 ‘세계의 문학’ 창간, ‘오늘의 작가상’ 제정

-81~99년 대우학술총서 발간

-94년 비룡소, 96년 황금가지, 97년 사이언스북스 설립

-제33대 출협 부회장(1980~81년),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84~85년), 한국단행본출판협의회 대표 운영위원(86~88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화관문화훈장’ ‘간행물윤리상’ ‘서울시 문화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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