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달러 환율 불안에는 국제 환투기 세력인 헤지펀드(투기성 단기 자금)들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0일 서울외환시장의 대 혼란 역시 발단은 역외(NDF·차액결제선물환)시장에서 이뤄진 국제 헤지펀드들의 달러매도 공세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날 당국에서 ‘환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11일 외환당국과 금융계 등에 따르면 국제 환투기 세력이 현재 최우선 공격타깃으로 삼는 통화는 타이완의 뉴타이완(NT)달러화와 한국의 원화다. 최근 들어 국제 환투기 세력들이 한국과 타이완을 노리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급변동한 10일 타이완외환시장에서는 NT달러환율이 4년반 만에 최저수준까지 떨어졌다.
환투기 세력들의 공격이 이뤄지는 곳은 런던 싱가포르 뉴욕 등의 NDF시장이다. 특히 뉴욕 NDF시장은 한국시간으로 새벽에 폐장되기 때문에 바로 몇 시간 후 열리는 서울외환시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일종의 선행 환율인 셈이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최근 뉴욕NDF를 중심으로 헤지펀드들의 매도공세가 계속되면서 원화의 NDF환율이 하락하고 이에 영향을 받은 국내 거래자들이 달러를 팔아치움으로써 원·달러환율이 급락하는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헤지펀드들이 만들어 낸 NDF환율 하락 때문에, 국내 금융기관은 물론 멀쩡한 수출업자들까지도 달러를 투매해 원·달러환율이 필요이상으로 폭락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NDF시장에서 달러매도를 주도하는 헤지펀드들은 이른바 ‘모델펀드’들이다. 모델펀드는 금융공학적으로 설계된 특정 모형에 따라 가격변동시 자동으로 매수·매도가 이뤄지는 방식이다. ‘사람 아닌 컴퓨터가 투자결정을 내린다’는 전형적인 단타형 헤지펀드닙다. 시장관계자는 "뉴욕 NDF시장에서만 10여개의 모델펀드가 원·달러환율을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헤지펀드들은 작년말 이후 기본적으로 달러화에 대해서는 매도기조(숏 포지션)를 유지하면서 아시아 통화에 대한 투자를 늘려왔다. 한국 원화와 타이완 NT달러는 물론, 인도 루피화나 싱가포르달러화도 크든 작든 헤지펀드들의 공격대상이 되어왔다.
그중에서도 원화와 NT달러화가 집중 표적이 된 까닭은 거래량이 많고 유동성이 풍부한 통화라는 점,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주식자금 유입으로 절상(환율하락) 요인이 많다는 점 때문이다. 절상압력을 받고 %있는 통화를 매입함으로써, 절상속도를 더 가속화시킨 뒤 적절한 시점에 처분해 차익을 남기는 것이다. 세계 3,4위 외환보유국인 타이완과 한국의 통화가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재경부와 한국은행은 이 같은 헤지펀드들의 투기적 움직임에 대해 일전불사 방침을 천명한 상태다. 투기세력과의 전쟁은 외환당국이 시장에서 강도 높은 달러매입에 나선다는 의미지만, 문제는 ‘실탄’동원의 제약에 있다.
시장개입의 실탄은 외환시장안정용 국채(환시채) 발행과 발권력 두 가지다. 그러나 환시채 발행을 늘릴 경우 1~2월 채권시장 파동처럼 금리폭등을 유발할 수 있다. 발권력 동원은 통화증발을 수반하기 때문에 한은 자체가 기피한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시장개입에 제약과 비용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환투기 세력의 움직임을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 대가를 치르더라도 단호한 개입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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