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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고/ 실사구시적 경제 개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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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고/ 실사구시적 경제 개혁을

입력
2005.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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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경제학자라면 많은 이가 다산 정약용 선생을 귀감으로 삼고자 할 것이다. 나 역시 마음 뿐, 제대로 따르지는 못하고 있으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만은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실사구시를 제대로 실천하는 것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과 같은 관료중심사회, 왜곡언론이 판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경제정책에서의 실사구시는 첫째, 우리경제에서 무엇이 잘되고 잘못되고 있는지 제대로 진단하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제대로 진단하지 않고 처방을 내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둘째, 환자에 맞는 처방을 하는 것이다. 같은 병이라도 환자의 체질, 연령 등에 따라 처방이 다르듯 경제정책도 국민경제의 특성에 따라 달라야 한다.

다산을 귀양 보냈던 잘못된 관료주의는 지금도 활개를 치며 실사구시의 실현을 저해하고 있다. 우리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체질이 상당히 바뀌었는데도 아직도 박정희 개발독재식 처방을 들고 나오는 경우가 있다.

경제는 병들었는데 진단도 안하고 괜찮다고 우기는가 하면, 아프지도 않은데 불필요한 약을 과잉투약하는 경우도 있다. 돌팔이 의사는 환자가 어느 정도 가려낼 수 있지만, 돌팔이 관료는 5년 임기 정권이 제대로 가려내지 못해 다음 에서까지 잘못된 행태가 반복되곤 한다.

고시로 출발한 관료들은 그들끼리 승진경쟁이 치열하다. 당연히 자신의 안신과 입신에 신경써야 하므로 국민경제의 진단도 가급적 낙관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 비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더라도 공식석상에서는 내놓기를 꺼린다. 따라서 경기 진단, 구조개혁 등에 대한 의견을 관료집단에서 구한다면 그 정권은 성공하기 어렵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직전까지 "우리 경제는 기초여건(fundamental)이 좋아 외환위기가 일어날 리 없다"고 얘기한 이들이 누구인가. 그 몇몇 관료의 잘못된 진단으로 국민이 7년 이상 고생했다. 이처럼 진단과 처방을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하느냐 안 하느냐는 국민경제의 향방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외환위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하는데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특히 부진한 분야가 정책생산 분야다. 동남아국가에도 없는 낡은 관료제가 주 원인이며, 그 중에서도 경제부처의 오진과 그에 따른 잘못된 정책판단이 주범이다. 고위관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벌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을 것이다. 현 정부가 공공 혁신를 강조하는 등 일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세계적으로도 별로 남지않은 낡은 고시제도를 갖고 실사구시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시형 관료제만이 실사구시를 막는 유일한 장애물은 아니다. 언론의 과다한 정파성도 문제다. ‘경제가 위기니까 경제를 살리려면 개혁을 늦추어야 한다’는 논지가 그 것이다. 수출이 급증하고 자국 통화가치가 너무 뛰어올라 걱정하는 나라가 위기라면 말이 되는가. 또 환자가 중병이 들면 수술을 하는 건 당연지사인데 개혁을 늦추라고 하는 건 또 뭔가. 언론의 왜곡은 필요한 개혁을 표류하게 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정부 정책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정치권력이 경제정책에 불필요하게 개입하는 것도 지양돼야 한다. 이것들이 지나치면 대중영합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내수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내수 회복을 자신 있게 진단하려면 더 많은 시장정보가 요구된다. 내수회복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선진경제와의 경쟁에서 이겨낼 국제경쟁력을 완비하고 있지 못한 만큼 취약부문의 개혁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현재 이 지구촌 경제의 중요한 흐름을 대강이나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실사구시적 개혁이 얼마나 긴요한가를 절실히 느낄 것이다.

김태동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다산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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