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 왜곡교과서 어떤 내용 담고있나
일본의 극우단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지난해 4월 일본 문부과학성에 검정을 위해 제출한 2005년도판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신청본은 2001년도판에 비해 침략과 만행 등의 잘못을 숨기고 자신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새 역사교과서를 분석한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도 "2001년판이 ‘왜곡 교과서’였다면 2005년판은 ‘은폐 교과서’이며, 더 나아가 ‘침략을 미화하고 자신의 피해만 강조하는 교과서’로까지 변질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외신보도와 외교통상부의 브리핑에 따르면 새역모는 한국의 사회교과서에 해당하는 공민교과서를 통해서도 이 같은 의도를 명백히 했다.
역사교과서 새 역사교과서는 ‘세계 열강에 들어간 일본’이라는 제목의 장 가운데 ‘한국 병합’ 부분에서 "한국병합 후에 설치한 조선총독부는 철도·관개(灌漑) 시설을 정비하는 등의 개발을 하고, 토지조사를 개시하며, 근대화에 노력했다"고 기술해 2001년판에 등장하지 않았던 ‘근대화’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근대화라는 단어는 1876년 개항 이후부터 식민지 시기까지 조선관련 부분에서 모두 4번 사용돼 조선에 대한 침략을 은폐하고 미화하려는 관점을 더욱 노골화 했다. 새 교과서는 또 2001년판 신청본에 썼다가 자체정정이라는 이유로 삭제했던 "한국 국내에서는 일부 병합을 받아들이자는 소리도 있었지만"이라는 부분을 다시 첨가했다.
‘전시 하의 생활’이라는 부분에서도 "조선반도에서는 일청(日淸)전쟁 개시 후 일본식 성명을 사용하게 하는 것을 인정하는 창씨개명이 행해지고 조선인을 일본인화 하는 정책이 진행됐다"고 서술했다. 2001년판 "조선이나 대만에서는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는 황민화 정책이 강제돼 일본식 성명을 사용하게 하는 정책 등이 진행됐다"라는 문장에서 ‘강제’라는 단어를 삭제한 것이다. 일본군대 위안부,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등에서의 대규모 학살, 강제연행 등에 대해서는 2001년판과 마찬가지로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난징(南京)대학살은 난징사건이라는 중립적인 명칭을 단 뒤 주석을 통해 논쟁 중이라고 얼버무렸다.
새 역사 교과서는 2001년판에 없던 ‘공습의 피해’를 추가했다. 이 부분에서 "전쟁 말기에 국민은 전화(戰化)에 노출됐다. 1945년 3월 10일에는 도쿄(東京)대공습이 있어 하루 밤에 약 10만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고 서술해 일본의 피해를 최대한 부각시키는 반면, 한국인들의 피해 사실은 적지 않았다. 구한말 한반도 주위의 국제 정세를 설명하면서 기존의 "일본에 적대적인 대국"이라고 서술했던 부분을 러시아로 명시해 국제 갈등의 책임을 회피하고 오히려 ‘러시아가 한국을 점령하면 위험하니 그 전에 지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 외에도 새 교과서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 대한 컬럼을 실어 위대성을 각별히 부각시켰고 네루 등이 일본을 비판한 사실을 감추고 칭찬한 사실만을 인용하기도 했다.
새역모는 일선 중학교의 교과서 채택율을 높이기 위해 새 교과서의 판형을 기존보다 훨씬 크게 만들고 사진 등 시각 자료를 대폭 추가했다. 2001년 판의 중학교 채택율은 0.039%에 그쳤다.
공민교과서 2001년판 공민교과서에서 "북방 영토와 다케시마(竹島), 센카쿠(尖閣)열도 등에 대해 러시아 한국 일본이 영유권을 각각 주장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봐서 모두 우리영토다"라고 서술했던 것을 이번에는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모두 우리영토다"라고 고쳤다. 특히 이전 교과서에는 북방 4개도서와 센카쿠열도 등에 대한 사진만 실었으나 2005년판에는 독도 전경 사진을 추가했다. 또 북한 공작선의 일본 영해 침범과 핵 미사일 개발 등 북한의 위협을 부각하면서 일본 주권 침해 사례로 거론하기도 했다.
최영윤기자daln6p@hk.co.kr
■ 日 교과서 검정·채택과정/ 신청본 상당수 그대로 통과
일본의 교과서는 각 출판사가 신청한 내용을 ‘교과용 도서 검정조사심의회’가 심의를 한 뒤 필요할 경우 수정을 지시한다. 수정본은 문부과학성이 최종 합격여부를 결정한다.
올해의 중학교 교과서는 4월 검정결과가 발표되고 8월 각 지자체 별로 교과서 전시회를 거쳐 사용할 교과서를 결정한다.
고교 교과서는 국·공·사립 모두 학교 단위로 채택하지만 공립 중학교는 각 지자체 교육위원회가 채택권을 갖고 있다.
검정과정에서 핵심은 지난 1982년 첫 교과서 파동을 계기로 만들어진 ‘근린제국 조항’이다.
과거사 기술 등에서 "이웃 아시아 국가들의 입장을 배려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2001년 후소샤 중학 역사교과서는 무려 137곳이나 이 조항에 따라 표현을 수정했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검정제도 자체가 민간출판사의 자율적 기술에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대전제로 운용되기 때문에 검정 신청본의 역사관과 표현이 상당수 살아남을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2002년 고교 역사교과서 검정에서도 메이세이샤(明成社)와 짓쿄(實敎)출판사의 교과서에서 독도 영유권 관련 기술이 검정을 그대로 통과했었다.
특히 시마네(島根)현 의회가 ‘다케시마(竹島)의 날’ 제정 조례안을 상정하며 "일본 정부가 더 나쁘다"라고 주장하는 등 일부 단체와 우익이 일본 정부에 가하는 비난과 압력도 상당하다.
이에 따라 후소샤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기술과 사진을 검정과정에서 어떻게 취급할지 주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 公民 교과서/ 사회일반·도덕 다뤄…애국심 등 고취
일본의 중·고등학교는 사회 과목을 공민, 일본사, 세계사 등으로 구분해 각각 별도의 나누어진 교과서를 사용한다.
공민은 정치, 경제, 사회 일반과 도덕·윤리를 다루는 교과과정이다. 후소샤와 ‘새역모’는 과거의 침략과 군대위안부 등 피해 반성을 ‘자학사관’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배제하고 자랑스러웠던 역사를 가르친다는 역사교과서 편찬 방침을 갖고 있다. 동시에 공민교과서에서는 애국심, 국가관, 천황제를 포함하는 일본의 전통에 대한 자긍심 등을 강조하는 기술을 원칙으로 삼는다.
역사와 공민교과서가 합쳐져 이들의 왜곡된 역사관과 현실·미래관의 완결편을 형성하는 격이다. 또 역사교과서에 대한 경계와 관심이 집중되는 허를 찔러 공민교과서에 문제 기술을 끼워넣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도쿄=신윤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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