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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정쟁의 빈 자리

입력
2005.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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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도시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한나라당이 겪은 분열상 중 하나가 ‘빅딜설’이었다. 여당이 과거사법 처리를 유예해 주는 조건으로 한나라당이 행정도시 계획을 찬성하는 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면 당사가 남아 나지 못할 만한 대형 스캔들이다. 설의 시발지로 꼽힌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한나라당 지도부가 고발하는 모션을 취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자구책이라 할 만했다. 며칠 만에 설은 사그러 들었다. 애당초 교환 조건이 서로 맞지도 않는 과장과 증폭으로 정리되는 듯하다. 그러나 이 설이 파장을 일으킨 것은 나름의 배경을 갖는 것이기도 했다. 이전의 수도이전법을 극력 반대하던 야당 치고는 너무도 쉽게 여당에 협력한 것으로 비쳤다는 점이다. 그 결정과 행위가 선뜻 설명되고 납득되기가 어려워 의혹으로 번졌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쉽게 설명되지 않으면 생각과 의문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올해 들어 정치권의 으뜸가는 의문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변화 여부를 꼽을 수 있다. 이념형 쟁점을 생산하는 공격형 스타일에서 타협적 실용주의로 노선을 전환했다는 관측들이 그 것이다. 그러나 이는 관측일 뿐 노 대통령이 직접 이를 표현하거나 언명한 %C적은 없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도 존중하겠다"는 최근 연설이 인상적이지만 "별 놈의 보수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는 공개 강연이 그의 어록으로 여전하다. 그렇다고 대통령에게서 변하지 않았다고 볼 근거가 나오지도 않는다. 오히려 기회가 있을 때 마다 꾸준히 포용과 타협의 메시지를 전하려 애쓰는 것 같다. 취임 2주년을 맞는 국회 국정연설에서는 "파란만장의 2년에서 많이 느끼고 배웠다"고 반성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대통령이 부드러워 지니 정치엔 정쟁거리가 사라지는 듯하다. 행정도시법의 여야 합의처리가 가능했던 것도 이런 분위기가 작용한 탓이다. 무엇보다 이념형 논쟁이 잦아들어 논전의 무대가 조용해 졌다. 송호근 교수는 얼마 전 노무현 정부 2년을 ‘이념 과잉, 정책 부재’로 압축했는데, 대통령의 변화와 함께 이념의 과잉이 걷힌 것은 우리가 교훈을 얻을 줄 안다는 점으로 간주하고 싶다. 진보니 보수니, 우파니 좌파니 하는 논쟁에서 서로는 얻을 만큼 얻었고, 때릴 만큼 실컷 때렸다. 진보의 공격은 보수를 수세로 몰았지만 다시 보수의 단결과 반격을 불렀다. 진보나 좌파에 ‘수구’라는 공격적 수식어가 붙게 됐으니 이제 양측은 균형상태이다. 그리고 휴전 중이다.

대통령의 변화는 전선을 흐리게 하%F는 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승부사 노무현’의 셈법은 없었을까. 대통령의 진정에 계산을 들이대 깎아 내리고 싶지는 않지만 따져 봄 직은 하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30%대 지지도가 만성적 수준이라면 그 대통령은 위기 상태이다. 노 대통령이 자신을 바꾸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이유라고 해야 한다. 변하기만 하면 얻을 것이 더 많게 돼 있으니 왜 변하지 않겠는가. 2년의 업적이 부실하다지만 사실 노 대통령은 원하는 일, 하고 싶은 말들은 할 만큼 다 했다. 주류세력의 교체가 그렇고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도 그렇다. 논란 중이긴 하지만 행정도시도 이룰 만큼 이룬 결과다. 적어도 시도했다는 장면과 기록은 충분히 연출됐다. 안 되는 일들은 반대세력의 몫이지, 내 탓이 아니라는 증명도 된 셈이다. 그 반대를 존중하고 타협하겠다고 하자 지지는 더 올랐다.

그러나 정쟁의 빈 자리를 메울 책임은 이제부터 더 절실하다. 달라진 모습으로 만들어 내고 보여주는 것이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대통령 자문위원회가 참여정부 2년을 평가하는 심포지엄을 열던 날, 대통령이 부총리 인사 문제로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 같은 일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조재용 논설위원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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