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 2일 국회에서 반세기 만에 성차별과 반(反)인권의 상징인 호주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75년 유엔이 정한 ‘세계여성의 해’를 계기로 가족법 개정운동을 시작한지 30년 세월이 흘렀고, 1997년 3월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을 시작한지 8년이 지났다. 호주제 폐지는 성 평등 사회로 나아가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성차별적인 법과 제도가 많이 개선되었지만 가족의 관습에 영향을 미치는 ‘민법 중 가족편’을 개정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국민 80% 이상의 지지를 얻기까지 여성, 시민, 종교계,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문화인 등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호주제 폐지의 성과와 향후 과제를 정리하면서 성 평등 사회로 나아가는 새로운 장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호주제 폐지, 친양자 제도 도입, 부부 합의에 의한 어머니성 선택, 자녀 복지를 위해 자녀성 변경이 가능해짐으로써 보다 평등한 가족관계와 가족문화가 자리잡게 될 것이고, 한 부모 가정, 재혼가정, 독신모 가정의 자녀들이 호적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딸만 낳았다고 죄의식을 가졌던 어머니들, 재혼 후에 자녀성을 새 아빠 성으로 바꾸지 못해 노심초사하며 학교를 보내던 재혼가족, 세 살짜리 손자가 호주로 있는 할머니 호적 등 웃지 못할 가족의 비극이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이 해체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기존의 부계혈통 가족문화가 부모양계의 가족으로 확대되는 것이므로 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출가외인’이라는 말이 사라지면서 가족이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다. 오히려 기존 호적은 여성이 결혼하면 호적에서 제적되고 차남은 분가하도록 해서 호적상으로 출가한 딸과 차남은 가족이 아닌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제 실생활에서의 가족과 서류상의 가족이 일치될 것이고, 가부장적 가족관계는 사랑과 배려, 돌봄의 연대, 책임감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2008년 1월부터 호주제가 사라지면 호주를 중심으로 구성된 호적법을 대체할 새로운 신분등록법을 제정해야 하는데 성 평등의 원칙과 개인존엄을 지키기 위한 사생활 보호원칙이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현재 법무부가 마련한 안은 현행 호적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신분등록원부에 기록하려고 해서 우려스럽다. 대표적으로 지역차별을 조장해 온 본적의 유지와 가족란에 형제자매와 배우자 부모의 인적사항까지 기록하도록 해서 너무 많은 정보가 집적되는 문제가 있다.
이제 호적은 전산화되어 있으므로 신분등록원부 한 장에 (시)부모, 자식, 배우자, 형제자매, 장인장모까지 모두 기록하지 않아도 상호 연계시스템을 갖추면 필요한 정보를 출력해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호주제가 사라진다고 해서 우리 마음 속의 호주제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법, 제도상의 성차별은 걷어냈지만 우리 마음 속에 남아있는 성차별적인 의식, 관행, 문화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호주제의 실질적인 폐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정과 사회에서 대대적인 의식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교과서의 내용부터 달라져야 하고, 드라마·광고·영화 등 문화 콘텐츠의 내용도 변화해야 한다.
호주제 폐지는 우리 사회가 실질적인 성 평등 사회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될 것이고 남성과 여성의 고정적인 성역할 분담구조가 변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남성은 부양 책임, 여성의 돌봄 책임이라는 이분법적인 역할분담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공동으로E 돌보고 부양하는 방식으로 가족관계가 변화해야 하고 그러려면 가족구성원 개개인의 참여와 책임이 커져야 할 것이다.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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