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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처진 아이들/ (中) 학교 끝나면 할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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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처진 아이들/ (中) 학교 끝나면 할일이 없다

입력
2005.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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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4시 서울 강북구 A중 교정은 학교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한꺼번에 교실에서 쏟아져 나오면서 한순간에 시끌벅적해진다. 학생들이 썰물처럼 교문을 나가고 한참이 지나자 이 학교 2학년 이민준(가명·14)군이 느릿느릿 모습을 나타낸다. 혼자 운동장 구석 철봉대로 가 가방을 걸어놓고 턱걸이를 몇 번 하더니 거꾸로 매달려 멍하니 학교 교정을 바라본다.

민준이는 3년 전인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가 이혼한 뒤 할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동생 둘은 형편이 좀 나은 고모집으로 보냈다. 아버지는 파지 등을 주워 고물상에 넘기는 일을 하고 있지만 워낙 수입이 적어 기본적인 생활비도 모자란다. 당연히 민준이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다. 과외나 학원은커녕 참고서도 사본적이 없다. 그래서 민준이는 학교가 끝나면 할 일이 없다. 공부는 따라갈 수 없고 집에 들어가도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그저 길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민준이가 걸음을 옮긴 곳은 학교 근처 아파트 단지 놀이터. 벤치에서 작은 돌을 집어 그네를 향해 몇 번 던져 보더니 이내 벤치 위에 누워버렸다. 1시간 정도 흘렀을까. 다음 코스인 PC방으로 갔다. 돈이 없는 민준이는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을 옆에서 구경하거나 훈수를 두는 게 고작이다. 주인 아저씨가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린다.

예전에는 2~3시간 정도 이곳에서 머물렀지만 최근 소일거리가 생겼기 때문에 1시간 정도 지켜보다 얼른 학원가로 뛰어갔다. 새 학기가 시작돼 새로 사귄 같은 반 친구들을 일일이 집까지 바래다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학원을 먼저 마치고 나오는 친구부터 1명씩 동행해 집까지 바래다준 뒤 다시 학원 앞으로 와서 다른 친구를 기다린다. 민준이는 "친구들을 집에 데려다 주면 친해지니까 재미있어요"라며 "또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보더라도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는 아이구나라고 생각할 테니 그것도 좋고요"라고 말했다

친구들을 다 바래다주고 나면 오후 8시가 된다. 집 쪽으로 가면서도 편의점과 상점 등이 있는 상가에 들러 어슬렁거린다. 기웃기웃하다 상가 경비원이나 한가한 가게 주인과 이것저것 얘기를 한 뒤 오후 9시가 돼서야 집으로 들어간다. TV부터 켜더니 잠시 보다 이내 잠이 든다. 밤 10시께다.

민준이는 고교진학을 포기했다. 공부하기가 싫은 건 아니지만 이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영어의 경우 ‘Thank you’ 정도도 쓸 줄 모른다. 중학교만 졸업하면 주유소나 편의점 등에서 일할 계획이다. 그는 "꿈 같은 거 없어요. 아버지도 ‘공부 %B못 하는 게 뭘 하겠느냐. 아무거나 해서 돈이나 벌어라’고 하는 데 제 생각에도 그게 나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민준이의 경우처럼 가정에서 챙겨주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손을 놓는 바람에 공부를 포기하고 거리에서 배회하는 청소년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대부분 불우한 가정형편 탓에 아무도 돌봐 주지 않는 상황에서 제멋대로 소일하며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시내 중·고교생 중 매년 1만명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며, 이 중 20%가 가정해체와 빈곤 등이 이유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비록 진학을 포기하고 공부E를 전혀 하지 않는 학생이라도 학교 공부 이외의 다른 사회적 활동에 흥미를 갖도록 지도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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