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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음식 - 박재은의 음식이야기 - 약주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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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음식 - 박재은의 음식이야기 - 약주예찬

입력
2005.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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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로를 푸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운동을 하거나 책 한 권 손에 들고 집에서 쉴 수도 있고, 지인들을 만나 밀린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방법도 있다.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처럼 귀가하는 길에 으레 들르게 되는 선술집이라도 동네에 있으면 ‘한 잔’으로 피로를 풀어도 좋고. 술이 술을 먹는다고, 과음은 물론 경계해야 하지만. 그래도 ‘약주’삼아 일과 후 마시는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이 주는 나른한 휴식을 무엇에 비할까?

◆ 소주

애주가를 부모로 둔 덕(?)에 소주 맛은 비교적 일찍 볼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 아빠가 따라주신 첫 잔은 그러나 쓰고 독하기만 했다. 그러던 내가 소주의 맛을 처음 안 것은 프랑스 체류시절, 20대의 어느 날이었다. 값 싼 와인과 치즈의 맛으로 혀가 제법 물들 무렵 한국 음식점에 갈 일이 생겼던 것. 일행과 함께 단체로 주문한 김치찌개와 더불어 소주가 1병 씩 상에 올랐다. 그때의 그 맛이란! 점도 있는 알코올이 목으로 넘어가니 미세한 단맛이 올라 혀를 싹 정리해 주던 그 맛은 정답고 만만하고 명쾌했다. 이 글을 읽으실 어르신들을 앞에 두고 결혼도 안 한 처자가 "제가 소주 맛을 좀 알지요" 말하기에는 민망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10년 전 그날 이후 소주는, 기쁜 날은 기뻐서 슬픈 날은 슬퍼서 찾게 되는 벗이 되었고, 마시는 방법도 다양하게 발전시키기에 이른다. 예를 들어 얼음을 채운 물 컵에 소주를 붓고 레몬즙과 사이다를 적당히 섞어 마시는 칵테일은 따뜻한 날씨에 좋다. 이때 매콤하게 구운 닭 가슴살을 샐러드에 올려 곁들이면 든든한 안주가 된다. 고추기름과 두반장, 그리고 두부를 넣고 볶은 ‘라면볶음’도 소주 칵테일과 맛이 어울린다. 꽃샘추위가 가끔 찾아오는 요즈음에는 칵테일 말고 ‘깡 소주’가 더 제격이다. 북한산 밑 실비집의 돼지 곱창이나 안국동 깡통집의 돼지 껍데기를 찾아 갈 여유가 없는 날에는 고추장 양념으로 버무린 삼겹살 구이를 준비한다. 생선 머리를 얼큰하게 끓이면 여럿이 술잔을 기울이기 좋고, 과자 부스러기에 소주를 따는 처량한 독상은 봉지 굴을 섞은 파전 한 장으로 운치를 얻는다.

◆ 맥주

나는 맥주가 배만 부르게 만드는 탄산 덩어리라고 생각 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땡볕 산행(山行) 후 들이킨 찬 맥주의 맛이 그 생각을 바꿔 놓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맥주는 땀 흘린 입맛에 더욱 맛있다는 것을. 사실 맥주는 쭉 들이켜서 목을 넘기는 그 쾌감으로 마신다지만, 뚝딱 만든 한 그릇 음식과 함께 해도 시원하다. 오징어나 새우, 조개를 넣고 매콤하게 끓인 퓨전 스타일의 스프는 만드는데 15분이 채 안 걸리지만, 집에 갑작스레 손님을 맞았을 때 맥주 몇 병과 상에 내면 푸짐하다. 다진 마늘을 섞은 버터에 구운 마늘빵이라도 한 소쿠리 곁들이거나, 마늘을 편으로 썰어서 튀기듯이 밥을 볶아 대접하면 떠들썩한 맥주 파티가 시작된다. 맥주 한 컵에 소주 한 잔씩을 섞는 ‘소맥(쏘맥으로 발음해야 더 맛있다)’. 맥주는 가볍고 소주는 부담스러울 때 마시는 우리식 칵테일 이지만, 프랑스에도 이런 칵테일이 있다. ‘빠나쉐(panache)’라고, 서로 다른 재료를 섞는 다는 뜻에서 나온 이름의 이 칵테일은 레모네이드와 생맥주를 반 씩 섞은 여름 음료다. 그래서 프랑스의 여름은, 학교 앞 노천카페를 가득 메운 학생들이 빠나쉐나 반 컵짜리 생맥주를 홀짝이며 더위를 견디는 모습이 흔하다. 맛이 짙은 흑맥주에 스파클링 와인(발포성 와인)을 섞은 ‘블랙 벨벳’이라는 고급스러운 이름의 칵테일도 있는데, 구수하면서 쌉쌀한 맛이 있어 버터에 지진 오믈렛이나 간장과 참기름 향이 도는 불고기와도 잘 맞는다. 벨기에 사람들은 홍합을 안주로 해서 맥주와 먹는데, 화이트 와인이나 맥주를 부어 향을 낸 홍합 찜에 수십 종의 맥주를 구비한 벨기에 식 체인점들을 유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소주의 ‘크-’같은 깊이는 없지만, 클럽에서 선채로 마시는 병맥주나 을지로 골뱅이집의 맥주는 ‘캐주얼한 맛’이 있으니 벨기에든 서울이든 세대를 넘어 맥주가 사랑 받는 이유는 그 때문이리라.

와인 강사이기도 한 내가 굳이 소주와 맥주를 즐기는 이유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는 만만함 때문이다. 지친 일과 후에는 떠받들어야 할 만큼 고급인 술보다 옆집 친구처럼 아무 때나 불러낼 수 있는 소주나 맥주가 더 반갑다. 덥다가 춥고, 춥다가 따뜻한 봄 날씨의 변덕에 심통이 난다면 빠나쉐든 소주 칵테일이든 한잔 챙겨서 경직된 심신을 노곤히 풀어보자.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헷갈릴 정도의 봄꿈은 아니더라도 노곤히 풀어진 몸으로 단잠을 청하면 그것만으로도 달콤한 휴식이 될 것이다.

푸드채널 '레드 쿡 다이어리'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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