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한 블로그 저널리즘이 세계 각국에서 기성 언론에 대한 위험한 도전자로 등장하고 있다. 보도에 대한 내부 검증 장치나 사회적 책임이 없는 ‘1인 매체’가 이제 전통적 언론 개념까지 크게 흔들고 있다.
미국의 경우 취재 자유 영역에서 기성 언론과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지난해 대선 후보 TV토론회와 공화·민주당 전당대회에선 블로거 전용 취재석이 마련됐다.
7일엔 블로거 개럿 그래프가 "언론의 정의를 확장한 사건"이란 평가 속에 백악관 출입기자단의 벽을 뚫었다. 제이 로슨 뉴욕대 저널리즘 교수는 블로그의 성장에 대해 "대중이 매스 미디어 도구를 손에 쥔 것" 이라며 "(언론)권력 지도에도 변화 조짐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영역 침해를 좌시하지 않고 있다. 블로그는 더 이상 언론의 ‘기사 거리’가 아니라 심각한 공방의 대상이다.
특히 이번 주로 예정된 ‘애플사 기밀 블로그 폭로’ 사건 판결은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올 수 있다. 법원이 애플사의 미발표 신제품 개발 계획 등을 공개한 블로거에게 취재원 보호권리를 인정할지가 주목된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의 쟁점을 "블로거도 기자(reporter)냐"로 압축했다. 미 언론은 "취재원 보호권리가 블로거에게 인정된다면 모든 국민이 같은 권리를 가진다는 논리로 이어진다"며 "법원이 이를 피하려고 기성 언론의 권리까지 부인하는 쉬운 해결책을 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유진 볼로흐 UCLA대 교수 등은 그러나 "기성 언론과 블로그를 나눌 원칙은 없다"며 "권리는 블로거들에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성 주류 언론들은 이제 블로그 저널리즘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블로그의 치명적 약점으로 거론되는 것은 언론과 비교할 수 없는 ‘신뢰성’이다. 좌파성향 논평가 빌 프레스는 "신원도 모르는 사람들이 %C취재원이나 보도 규칙도 없이 무책임하게 글을 쓴다"고 비난했다. BBC방송은 "폭도들의 집단 린치만 횡행할 뿐"이라고 보도했다.
‘풀뿌리 민주주의’ 속에 숨은 당파성도 문제. CBS의 댄 래더, CNN의 이슨 조던 등 기성 언론인에 대한 블로그 공격은 ‘문제제기 →퍼나르기 →집중 포화’가 모두 정치적인 보수주의 블로거들에 의해 이뤄졌다.
미 선관위(FEC)도 블로그를 정치자금법 규제 대상으로 삼을 지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브래들리 스미스 선관위원은 "정치 블로그 무법지대(freewheel)는 끝났다"고 경고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또 블로거 실제 이용자는 소수라는 여론조사름를 인용하면서 "미국인 대부분은 뭔지도 모른다"며 "블로그는 허탕(Blogs draw a blank)"이라고 ‘과잉 대표’ 문제도 거론했다.
블로그 저널리즘 옹호자들은 "주류 언론만이 진실의 유일한 파수꾼은 아니다"고 공박하고 있다. 비즈니스위크는 "블로그는 ‘사상의 자유시장’ 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시민 참여 확대로 문제점을 시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 기업들 "위기냐, 기회냐"/ 직원 블로그 광고효과 불구 내부기밀 유출 부작용도
블로그는 미국 기업들에게도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새로운 이익 창출 가능성을 여는 ‘기회’인 동시에 회사의 속사정이 낱낱이 드러날 수 있는 ‘위기’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델 등 정보통신(IT) 기업들은 마케팅 수단으로서 블로그의 위력에 주목, 회사 차원에서 직원 블로그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블로그 전문 광고대행사도 생겼다.
비즈니스위크는지는 직원 블로그의 장점으로 ▦고객 유인·충성 확보 ▦광고 효과 확대 ▦직원·고객의 불만 즉각 파악·대응 등을 들었다. 더구나 이 모든 게 ‘공짜’라는 것. 3년 전 이코노미스트지가 "기업들이 돈이 안 돼 블로그를 무시한다"고 보도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혼란 상태다. abc방송은 6일 "도박·도색 사이트 접속 차단 등 홈페이지 대책은 있지만 블로그는 너무 급격히 성장한 탓에 별 준비가 없다"며 "블로그는 기업 정책의 초점이 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블로그 상 표현의 한계는 대표적 논란거리. 상사나 회사에 대해 단순히 불만을 토로했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일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블로그는 사적 영역이고, 미 수정헌법1조에 따라 침해할 수 없는 표현의 자유를 갖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신기술 현황이나 재무 상태 등 기업 기밀 누출은 해고 사유가 된다는 견해가 더 많다.
수정헌법 1조는 정부의 언론 통제에 관한 조항이며, 기업은 내부 고발에 대한 보복이나 차별만 아니면 블로그 내용을 근거로 해고할 수 있다는 것. ‘국제 블로거보호위원회’도 1월 ‘블로거 권리장전’에서 ‘전면적 표현의 자유’가 아닌 ‘기업의 명확한 블로그 정책 수립’을 요구했다.
안준현기자
●블로그 신조어.
▦ 두스드(dooced)
블로그에 쓴 글 때문에 해고 당한다는 말. 속옷이 살짝 비치는 사진을 올렸다가 해고된 미 델타항공 스튜어디스 엘렌 시모네티의 블로그 이름에서 유래.
▦ 블로그스피어(Blogosphere)
공간적 의미인 사이버스페이스와 달리 상호 연결을 통해 특유의 문화를 형성한다는 뜻. 블로그(Blogs)와 영역(sphere)의 합성어.
▦ MSM
주류 언론(Mainstream Media)의 약자. 대안 저널리즘으로 떠오른 블로그와 구별해 신문, 방송 등 기성 언론을 일컫는 말.
■ 공포의 블로거/ 오보 파헤쳐 유명 앵커 축출‘비보도’폭로 CNN간부 사임
◆ 주류 언론에 대한 감시견(Watchdog)
미국 CBS의 댄 래더가 9일 24년간 지켜온 ‘이브닝뉴스’의 앵커 자리를 떠났다. %그는 지난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병역 기록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으나 인용한 문건이 허위로 밝혀지면서 보수 블로거들의 공세를 받았다. ‘래더바이어스드(www.RatherBiased.com)’에서는 그를 ‘우리 시대 정치화된 기자 중 가장 당파적인 인물’이라고 비난해 그의 명성에 타격을 입혔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CBS의 대통령 병역 비리 오보를 파헤친 ‘파워라인블로그(www.powerlineblog.com)’를 올해의 블로그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2003년 뉴욕타임스의 제이슨 블레어 기자는 다른 신문기사를 표절한 사실을 시인하고 사임했다. 보수 성향 블로거 들의 집요한 추적 결과였다. 당시 뉴욕타임3스의 하웰 레인즈 편집국장은 보수적인 편집에서 벗어나 기자들의 무한경쟁을 부추겼고, 보수 블로거들은 이 같은 보도태도를 비판했다.
◆‘비보도(Off the record)’란 성역은 없다
CNN의 이슨 조던 보도본부장은 1월 세계경제포럼(WEF)의 한 회의에서 "이라크에서 미군이 기자들을 조준해서 발포했고, 이로 인해 12명이 죽었다"고 언급했다. 주류 언론 기자들은 모임이 비보도를 전제로 한 점을 들어 보도하지 않았다.
반면 한 블로거가 포럼 공식 블로그에 조던의 발언을 공개했다. 조던은 진화에 나섰으나 ‘이슨게이트(www.easongate.com)’, ‘캡틴쿼터스블로그(www.captainquartersblog.com)’등을 통해 번진 비난의 불길을 잡기에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2월11일 사임했다.
2002년에는 트렌트 로트 당시 미국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가 블로그 때문에 물러났다. 그는 제임스 스트롬 서몬드 상원의원의 은퇴 기념 파티 석상에서 인종 차별 발언을 했지만, 주류 언론들은 그의 발언을 말 실수로 여겨 지나쳤다. 하지만 블로그를 통해 그의 발언이 확산돼 로트 의원은 끝내 총무직을 내놓았다.
김회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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