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우리 증권가에 ‘가짜 김박사’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혜성처럼 떠올라 고위인사 초청 세미나도 열고 하던 사람이 가짜 미국 박사로 드러난 것이다. 한 TV의 고발프로가 주말에 이 사건을 방송하는 걸 우연히 봤더니, 그의 활동내용이나 시기, 성씨와 사투리 등 여러 면이 나와 흡사했다.
그래서 약간 기분이 찜찜하던 차에 아니나 다를까 월요일 아침 출근하기가 무섭게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TV가 그의 목 아래로만 화면을 잡고 끝내 얼굴은 안 보여준 탓이었다. 그런데 사실 난 그 전에도 간혹 가짜 의심을 받았다. 말투도 투박한데다 주식투자를 온통 고스톱에 빗대는 게 번번이 화근이었다. ‘글로벌 경제’니 ‘선진 기법’이니 하는 걸 기대했던 경제학 박사의 입에서 ‘쌍피’니 ‘청단’이니 하는 말만 나오니 의구심들이 오죽했으랴.
하지만 세월이 가도 여전히 내 강의의 주 메뉴는 고스톱이다.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주식을 그만큼 금방 피부에 와 닿게 하는 비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스톱 속에 투자의 기본원리가 대부분 숨어 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 하든 그 고스톱 얘기 또 하나만 해 보자. A라는 사람이 1만원을 가지고 점당 100원짜리 고스톱을 쳐서 1만4,000원을 땄다고 하자. 그 판이 만일 점당 50원짜리 판이었다면 A는 얼마를 땄을까. 점당 200원, 또는 500원이었다면 얼마를 땄을까. 당연히 50원짜리 판이었다면 7,000원, 200원짜리였다면 2만8,000원, 그리고 500원짜리라면 7만원 등으로 점당 액수에 비례해 늘어날 것 같다.
과연 반드시 그럴까. 가령 A가 점당 100원짜리를 쳤을 때 본전을 기준으로 2만원을 따기도 했다가, 거꾸로 6,000원 잃기도 했다가, 엎치락 뒤치락한 끝에 1만4,000원을 딴 것이라 하면 어떤가. 이 때에도 답은 똑같은가. 아니다. 200원짜리, 500원짜리라면 점당 100원 고스톱에서 6,000원을 잃는 순간에 깡통을 차게 된다. 작게 치는 경우는 항상 비례관계가 성립하지만, 크게 치는 경우엔 그렇지 않다. 이른바 ‘비대칭의 함정’이다.
이 문제를 단번에 맞히는 사람을 나는 아직 못 봤다. 이 하찮아 뵈는 고스톱 얘기가 분산투자의 우월성, 위험관리의 중요성을 얼마나 날카롭게 예시하는지를 금방 알아차리는 이는 더더욱 못 봤다. 다들 현란한 지식, 잡다한 정보나 추구할 줄 알았지 ‘진짜’를 모른다는 증거다. 연일 금광발굴에 분주한 손에 화투 7장을 쥐어 보자. 그리고 금방 배신할 ‘종목’ 대신에 영원히 함께 갈 ‘원리’를 찾아 보자.
시카고투자자문 대표이사 www.chicagof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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