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신문의 오피니언 페이지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는 사설은 사회적으로 의미를 갖는 사안이나 현상에 대해 신문 혹은 신문사의 주장이나 의견을 펴는 글이다. 한국일보엔 9명의 논설위원이 있으며 보통 하루 3개의 사설을 내보낸다. 이를 위해 오전과 오후 두 차례 회의를 갖고 사설의 대상을 선정한 후 주제와 논지, 즉 무엇을 어떤 방향으로 쓸 것인지를 토의해 담당 논설위원이 대표집필한다.
그제 아침 논설위원실의 관심을 끈 사안은 모든 조간신문이 기사로 다룬 ‘중부지역 신당설’이었다. 염홍철 대전시장과 심대평 충남지사가 각각 한나라당과 자민련을 탈당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충청지역에 기반을 둔 신당이 출현할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이 뉴스가 사설로 쓸 만큼 의미와 가치를 가졌는지를 장시간 토론했다. 이를 주도하는 정치세력의 정체가 불분명한데다 또 하나의 지역당 출현에 대한 거부감이 대부분의 마음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 신당설이 사설 주제가 될 만큼 발아했는지의 여부도 문제였다.
오랜 정치권 취재와 데스크 경험을 가진 담당 논설위원은 두 단체장의 탈당이 행정중심 복합도시특별법과 연관된 정치셈법의 산물이어서 나름대로 정치적 의미를 갖지만 사설에서 앞장서 신당 창당설을 얘기할 필요가 있겠냐고 회의적 의견을 표시했다. 충청권만을 기반으로 한 지역정당을 만든다는 것이 상식적인 정치인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토의를 계속한 결과 사설을 쓰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신당 창당 가능성이 아직 익지 않았다 할지라도 행정도시 문제가 정략적으로 이용된다는 것, 더구나 그 방향이 지역정당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미리 쐐기를 박아 둘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실 우리의 정치판은 쓰나미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는 격변의 잠재력을 안고 있으며, 정치인은 표가 된다면 불속에라도 뛰어들 만큼 선거에 올인한다.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한 행정도시 계획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받기 전의 신행정수도건설계획에 비하면 반쪽도 안되게 쪼그라든 것이다. 그럼에도 그 정치적 폭발력은 핵폭탄에 비유되고 있다. 오히려 축소된 계획 자체가 고농축의 폭발력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 증명하듯,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한나라당은 그 후폭풍으로 지도력이 거의 붕괴상태에 놓여 있고 자민련은 존폐의 기로에 놓여 있다. 열린 우리당도 편한 듯싶지는 않다. 서울에서 떨어지는 지지도를 의식해서인지 보완책으로 서울공항을 이전하고 신도시를 개발하겠다는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이 한마디로 강남 부동산업계는 지금 잔뜩 들떠 있다. 그만큼 후유증도 클 수 밖에 없다. 행정도시의 건설취지, 즉 수도권비대화 억제와 국토균형발전의 틀은 깨어져 버릴 것이며, 따라서 행정도시 건설의 비전도 빛이 바래고 말 것이다.
작년 신행정수도 건설 문제가 첨예하게 쟁점화한 이래 우리는 꽤 많은 관련사설을 썼다. 그러나 이 문제를 갖고 사설 쓰는 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순수한 도시건설 계획의 비전만 놓고도 그 영향과 문제점이 장기간에 걸쳐 튀어나올 판인데, 행정도시 건설 자체가 첨예한 정치적 쟁점이 되어버렸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대통령 선거와 총선만 돌아오면 충청권 표를 놓고 소모적 정쟁이 벌어진다. 당장 4월 재선거부터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
언론인들은 정치의 무자비함이나 변화무쌍함을 느끼며 산다. 그래서 행정수도의 미래도 매우 가변적으로 생각한다. 또한 어떤 프로젝트가 착공됐을 당시와 그 후의 쓰임새가 처음에 구상했던 사람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정도로 변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경부고속도로가 텅텅 비어 경제성에 대한 회의적 전망이 신문지면을 가끔 메운 적이 있다. 한 세대 전의 인류문명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20, 30년 후 세상의 모습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행정도시가 정치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원래 정치적 소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유증이 지역이기주의 구도, 특히 지역당의 형태로 행여나 나타난다면 국민의 실망은 여간 크지 않을 것이다.
김수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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