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알 파치노가 주연한 영화 ‘베니스의 상인’을 보았다. 남장을 한 포샤가 샤일록에게 기발한 판정을 내리는 법정 장면이 나온다. 탐욕스러운 빚쟁이 샤일록은 안토니오가 빚진 살 1파운드를 가져갈 수 있다.
그러나 살만 가져야 할 뿐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릴 경우 샤일록은 재산을 몰수당할 것이다라는 판정이었다. 그때 샤일록은 힘없이 물러났다. 그러나 21세기에 샤일록이 법정에 선다면 그에게는 묘책이 있다. 지방흡입술이라는.
셰익스피어는 아름다움의 힘과 그것의 시듦에 대해, 그리고 아름다움을 배신하는 시간의 가혹함에 대해 많은 작품을 썼다. 그가 지금 세상에 살았다면 시간을(그리고 외모의 변화도) 멈추게 하는 수많은 종류의 약물과 의술로 가득찬 현대 문화에 깊이 매혹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성형수술은 너무 흔한 것이 돼 버렸다. 곳곳에 주름 제거 광고 전단이 나돌고 의사들은 얼굴에 바늘을 꽂을 때마다 돈을 번다. 월 스트리트 저널 2일자는 주름제거제 ‘레스틸레인’을 개발한 메디시스가 6개월에 한번씩 주름 제거 주사를 맞는 고객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레스틸레인 주사는 1회에 500~750달러가 들고 효과는 6개월 간 지속된다고 한다. 회사 측은 이 프로그램이 고객이 ‘펴진 얼굴’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팽팽한 얼굴을 가지려면 의사가 주사기에 약물을 채우고 얼굴에 꽂아주기만 하면 된다. 아이들이 시리얼 상자에서 사은품으로 주는 장난감을 꺼내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다. 얼굴이 쭈글쭈글해지면 다시 주사를 맞으면 된다.
셰익스피어가 주름 제거 주사를 알았다면 이 소재로 어떤 작품을 썼을까? 그러고 보니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등장한 배우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카데미상 얘기를 지루해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거기서 놀랗라운 것을 발견했다. 여성들의 얼굴이 너무나 괴상했고 또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보톡스 주사를 맞아 팽팽해진 이마에 콜라겐으로 부풀린 입술, 성형수술로 높이 세운 코와 깎아 놓은 턱…. 화려한 시상식장에 나타난 여배우들은 외계인 자매 같았다.
시상식을 보고 있자니 가까운 미래에 인간은 모두 똑같은 얼굴을 갖게 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여기에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얼굴뿐 아니라 몸도 똑같아질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 같다. 빼빼 마른 몸에 가슴만 커다란 모습으로 말이다. 어깨 끈 없는 드레스를 입고 인어 같은 각선미를 자랑하며 들어오는 배우들의 행렬을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10년 전만 해도 개성 있는 얼굴과 목소리, 걸음걸이를 갖춘 사람을 최고의 배우로 꼽았다. 캐서린 헵번과 에바 가드너, 마릴린 몬로가 모두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오늘날 잡지 표지와 홍보 행사 등 곳곳에 아름다운 배우가 등장하지만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간다. 디자이너와 코디네이터와 성형외과 의사들이 합작한 ‘여배우 동일화 음모론’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할리우드에서는 복제만 있을 뿐 창조는 없다.
셰익스피어는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시간은 그를 시들게 하지 못하리라, 그의 무한한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현대의 여성들은 아름답게 보이는 방법이 얼마나 많은지 잊은 채 오로지 시들어 보이지 않는 것에만 집착하고 있다.
모린 다우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NYT 신디케이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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