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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세상읽기/ 수학의 名門 ‘베르누이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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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세상읽기/ 수학의 名門 ‘베르누이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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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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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로 명문가라는 게 있다. 케네디와 록펠러 가는 각각 정치와 사업의 명문가이다. 정치와 사업은 부모와 자본의 후광에 힘입어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반면 고도의 지성과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한 학문 분야에서는 대대로 명성을 이어가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의 베르누이(Bernoulli) 가문은 유전학자들의 관심을 끌 정도로 17, 18세기 수학계를 주름잡는 수학자를 다수 배출했다. 수학계에서 베르누이 가문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를 위시해 150년 동?%? 음악계를 평정했던 바흐 가문에 견줄 만하다.

베르누이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수학자는 야곱(Jacob) 베르누이와 요한(John) 베르누이 형제이다. 야곱과 요한은 두 점이 주어지고 그 중 한 점에서 공을 굴릴 때 마찰력을 무시한다면 어떤 곡선을 따라 움직인 공이 다른 점에 가장 먼저 도착하느냐 하는 최단강하(最短降下)곡선 문제를 연구했다. 최단강하곡선이 되는 것은 원을 직선 위에서 굴렸을 때 원 위의 한 점이 그리는 곡선, 즉 사이클로이드(cycloid)다. '그림>

실제로 직선과 사이클로이드 모양으로 미끄럼틀을 만들고, 같은 높이에서 공 2개를 동시에 굴린다고 하자. 이 때 거리가 가장 짧은 직선을 따라 굴린 공이 가장 먼저 바닥에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사이클로이드를 따라 굴린 공이 더 빨리 도착한다. 사이클로이드에 놓인 공은 최적으로 가속되면서 구르기 때문에 가장 먼저 바닥에 도착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최단강하곡선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야곱과 요한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 야곱은 이 문제를 해석적으로 풀었으며, 요한은 직관적으로 접근했는데 이 과정에서 야곱의 식을 일부 도용했기 때문이다. 사이클로이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헬레네(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는 절세의 미녀)에 비유해 ‘기하학의 헬레네’라고 불리기도 한다. 요한은 아들 다니엘이 연구한 유체역학의 이론까지 자기 이름으로 발표할 정도로 탐욕스러운 면이 있었다고 한다.

베르누이 형제의 연구 결과에 다른 사람의 이름이 붙은 경우도 있다. 오늘날 미적분학 책에서 접할 수 있는 ‘로피탈의 정리’(L’Hopital’s rule)는 분수 형태로 주어진 식의 극한값을 쉽게 구하게 해주는 편리한 정리이다. 로피탈의 정리는 요한과 야곱 베르누이가 연구한 것인데, 이를 수학자 로피탈의 책에 실었기 때문에 로피탈의 정리라고 불리게 됐다.

요한 베르누이의 수제자 오일러(Euler·사진)는 18세기의 가장 유명한 수6학자이다. 오일러는 평생 500편이 넘는 논문과 저서를 출판한, 다작인 수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표기법의 중요성을 인식해 함수 f(x) , 수열의 합 ∑, 자연로그의 밑 e , 허수의 단위 i 등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많은 수학 기호를 고안해 냈으며, 이전부터 사용해온 원주율 π 도 오일러에 이르러 확고한 표기로 자리 잡았다. 수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 중 하나는 e , i , π 와 기본적인 수 0, 1이 절묘하게 결합된 ‘ e의 i π 제곱 + 1= 0’인데, 오일러는 이 식에 사용된 개념들의 표기를 처음 만들어냈다.

오일러의 업적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실명(失明)이라는 악조건을 딛고 이 같은 성과를 이룩했다는 점이다. 오일러는 20대에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들은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도록 모두 왼쪽 측면에서 찍은 것들이다. 한쪽 눈을 잃었을 때 "한 눈으로 보니 모든 현상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라고 했다니, 오일러에게 이런 시련은 큰 장애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일러는 60대에 왼쪽 눈마저 실명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비상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연구를 계속했다.

오일러의 실명은 작곡가 베토벤이 청각을 잃은 것과 비교된다. 베토벤은 30대부터 음악가에게 생명과도 같은 청각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해 40대 후반에 청각을 완전히 잃었다. 그러나 베토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제9번 합창 교향곡은 그가 청각을 상실한 후 작곡된 것이다. 차라리 처지가 바뀌어 오일러가 청각을 잃고 베토벤이 시력을 잃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오일러는 시력을 잃은 암흑 속에서 오히려 수학의 진리를 꿰뚫는 혜안을 얻었으며 베토벤은 청각을 잃은 덕에 정적 속에 울리는 더 깊은 내면의 선율을 들을 수 있었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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