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싸고 과학계가 논란에 휩싸인 지난해 10월, 인류학자들의 관심은 인도네시아 동쪽의 작은 섬 플로레스로 쏠렸다.
여기에서 9만5,000~1만2,000년 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유골은 발견된 섬의 이름을 따라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라고 이름 지어졌다. 신장이 81.4㎝에 불과한 유골의 주인공들은 J. R. R. 톨킨의 소설이자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인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키 작은 반인족(半人族) ‘호빗’이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해졌다.
인류학자들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현생 인류의 조상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인류의 표본인지에 큰 관심을 가졌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호빗’은 약 2만5,000년 전 인류의 조상으로 알려진 호모 사피엔스와 동시에 존재했다. 그러나 신장이나 골격 등은 전혀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다.
뇌 용량도 현생 인류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유골 주변에서 정교한 화살촉과 돌칼은 물론, 불을 사용한 흔적까지 발견돼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본토에서 배와 비슷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섬까지 건너온 것으로 조사됐다. ‘도구 제작은 현생 인류만 가능하다’는 기존 학설을 뒤엎는 놀라운 결과였다.
미국에서 발행하는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컴퓨터를 이용, 이 특이한 종족의 뇌 모양과 크기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3일자에 게재했다. 미국 호주 인도네시아 과학자들이 공동 수행한 이 연구는 플로레스에서 발견된 8구의 유골 중 여성으로 추정되는 한 구의 두개골을 단층 촬영해 3차원 영상으로 복원한 것이다. 이들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완성한 ‘호빗’의 뇌 모양을 현생 인류, 호모 에렉투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의 난쟁이 족인 ‘피그미’ 등 다양한 인류와 비교했다.
연구팀의 일원인 미 플로리다 주립대 딘 포크 박사는 "크기만 두고 봤을 때 ‘호빗’의 뇌 기능은 침팬지와 비슷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밝혔다. ‘호빗’ 뇌의 부피는 약 400㏄로 최초의 화석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인류학자들은 뇌의 용량이 지능과 비례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호빗’이 식물을 채집하고 돌을 약간 가공하는 수준이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훨씬 뛰어넘는, 정교한 도구를 만들어 썼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연구팀은 논문에서 "호모 플로레시엔스의 뇌 중 전두엽과 주름 모양이 현대인과 매우 흡사하다"면서 "이 같은 형태적 특징이 ‘호빗’의 발달된 지능을 설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이들은 또 ‘호빗’의 뇌가 왼쪽 앞부분과 오른쪽 뒷부분이 약간 돌출된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는 이들이 왼손잡이였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호빗’이 오랜 기간 고립돼 있어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완전히 다른 인류의 기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 시카고 박물관의 인류학자 로버트 마틴 등 일부 과학자들은 이들이 뇌가 작아지는 ‘이상소두증’을 지닌 기형의 일종이며 피그미족 같은 현생 인류의 한 갈래라고 반박하고 나서 앞으로의 연구 결과가 주목된다.
김신영기자 ddalgi@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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