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에 정년퇴임하면서 서울 내지는 서울 인근의 생활을 접고 이사할 곳을 찾아온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는 맞춤한 장소를 찾아 곧 지방으로 이사할 계획이다. 그는 8일자 한국일보에 쓴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라는 에세이에서 그가 이사갈 집은 산이 가까이 있고 책을 보관할만큼 커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마냥 큰 집으로만 갈 수도 없는 일"이어서 찾아낸 묘책이 도서관 가까이로 가는 것이었다. 부부가 평생을 모은 책(장회익 교수의 부인 역시 학자인 모혜정 전 이화여대 교수이다)을 도서관에 기증하고 공부할 때는 도서관을 찾는다는 생각이다. 학자가 평생 재산인 책을 간수하기 위해 큰 집이 아니라 도서관 동네를 선택한 것은 참으로 생태철학자답다.
장회익 교수가 찾아낸 장소는 충남 아산시 배방면이다. 이 곳에는 1999년에 개관한 농어촌 지역도서관이 있다. 이 곳 말고도 아산시 면 단위 지역에는 2개 농어촌 도서관이 더 있으니 농어촌 지역도 이제 충분히 만족스러울만큼은 아니지만 시설면에서는 주민들이 평생 학습할 기본은 갖춰놓고 있다. 문제는 그 안에 들어갈 소프트웨어가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전국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서울에 몰려 살다보니 역량있는 문화계 인사도, 문화프로그램도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심하다. 그런데 이런 석학이 책을 들고 지방으로 내려 간다니 이 참에 아산은 돌아가신 이순신과 맹사성의 고장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태학자가 사는 곳으로 그 분의 학덕(學德)을 지역민들이 향유하는 프로그램이 생겨나도록 적극성을 발휘해볼 만도 하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을 살리는 방법으로 문화축제와 그 지역 출신의 작고한 문인과 연관시킨 명소를 발굴하는 데 힘써왔다. 전북 군산은 채만식, 충북 옥천은 정지용, 전북 고창은 서정주와 연결되면서 관광객들을 불러모았다. 이것도 물론 좋은 일이지만 현재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그 곳에 살고 있는 위인들에게서 문향을 직접 맛보는 일보다는 못하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들은 이제 돌아가신 이들을 찾고 커다란 시설을 지으려고 경쟁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모셔오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지역 문화가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에 적극 나서주었으면 좋겠다. 사람이야말로 시설보다 흡인력있는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물론 일찍부터 지역의 랜드마크로 헌신해온 선구자들이 있다. 소설가 박경리씨는 사재를 털어 원주에 토지문화관을 건축해 후배 문화인들에게는 조용히 글 쓸 수 있는 숙소를, 지역 주민들에게는 문화강좌를 선물했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경기 이천에 사숙(私塾)인 부악문원을 만든 데 이어 고향인 경북 영양에 번듯한 한옥을 한 채 지었다. '자기 집 크게 짓는 게 뭐가 대단한 일이냐'고 냉소적으로 볼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유명한 작가가 사재를 털어 훌륭한 건축물을 고향에 남긴다는 것은 현재에나 미래에나 엄청난 선물이다. 이미 이곳은 전통의 격식을 사랑하는 영남 사람들에게 한번 찾아보고 싶은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이문열씨만큼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다른 작가들도 고향에 명소로 남을 멋진 집을 지을 생각은 없는지 궁금하다.
그림책 작가 이상희씨는 두 분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역 주민들과 어울리며 문화프로그램을 선사했다. 그는 원주로 이사가면서 지역의 주부들에게 그림책 만드는 법을 자원봉사로 가르쳤고 그에게 배운 주부들을 자원봉사자로 하여 '패랭이꽃 그림책버스'라는 그림책도서관을 토지문학공원 내에 만들었다.
장서를 들고 지방으로 들어가는 학자나 사재와 재능을 바쳐 지역에 명소를 만든 작가들을 따라 더 많은 이들이 지방 어딘가에서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어준다면 더 많은 이들이 대도시나 서울로 빠져나가지 않고 제 땅에서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더 빨리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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