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을 보자니 장영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작가 김종록(42·사진)씨는 1993년 완간한 소설 ‘풍수’의 책 끝에 "이제 천문소설을 쓰겠다"고 했고, 12년이 지난 지금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랜덤하우스중앙 발행)로 그 약속을 지켰다.
장영실은 기녀 소생의 관노 출신으로 혼천의 자격루 측우기 갑인자 등을 발명하고, 종3품의 관직에 오른 조선 최고의 과학자였지만, 그의 생몰 연대 조차 알려지지 않을 만큼 역사가 홀대한 인물이다. "조선왕조실7록을 비롯해, 연려실기술, 칠정산내편 등 문헌과 중국 고서들을 거듭 읽었습니다."
소설은 극히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그에 대한 기록과 당대의 역사 등을 토대로 작가가 구현한 과학자 장영실의 일대기이다. 하지만 우주의 별밭을 우러른 자연과학의 정신은 공맹의 도를 앞세운 중화(中華)의 시대정신과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그의 생애는 15세기 조선 르네상스의 거대한 증거였다.
그는 세종15년(1443) 천문관측시설 간의대를 만들고, 천문도를 돌에 새긴다. 중국이 아닌 조선이 세상의 중심임을, 한양의 하늘을 중심으로 별이 회전함을 돌에 새긴, 말 그대로 파처된꼭? ‘사건’을 벌인 것이다. "천하에 어디 중심이 있으랴… 하늘이 어찌 중앙을 내놓고 변두리를 내놓았겠는가."(‘2권’ p86) 하지만 조선 태조와 세조 때 제작된 중국 중심의 천문도는 남아있지만, 이 돌 천문도는 사라지고 없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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