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천호대로 부근의 허름한 상가건물 3층에 자리한 들꽃향린교회. 25평쯤 되는 공간에 출석교인이 20여명에 불과한 작은 교회다. 설립예배를 드린 지 3개월 남짓, 아직 직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걸음마 단계이지만 교회는 들꽃처럼 소박하고도 야무진 꿈을 갖고 있다. 교인수가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자매교회를 분립 개척한다는 이른바‘분가(分家) 선교’의 꿈이다.
실은 이 교회 역시 인근 송파동의 강남향린교회에서 분가해 나왔다. 교회를 세운 김경호(49) 목사는 11년 전 강남향린교회를 손수 개척해 담임을 해온 중견 목회자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말‘모(母)교회(강남향린)’로부터 예배당 임대보증금과 교인 일부를 지원 받아 들꽃향린교회를 설립했다. 재적교인 200여명의 어엿한 중형교회로 자립한 모교회는 부목사에게 물려주고, 정작 본인은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채 맨 바닥으로 나온 것이다.
김 목사가 분가선교를 목회 방향으로 삼은 이유는 단 하나. 교인 수 불리기에만 급급한 우리 교계의 성장제일주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교인끼리 얼굴도 모른 채 뒤꽁무니만 보며 예배 드리는 대형교회에서 개개인의 영적 교제와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삶 속에서 이를 증거하고 실천하는 교회, 초대교회 공동체 같은 작은 교회야말로 한국교회의 대안이 되어야 합니다."김 목사가 추구하는 분가선교의 이정표는 ‘작지만 큰 일을 하는 교회’만들기다.
성도가 증가하면 교회건물부터 증축하기 바빴던 교회들이 내적 성찰과 질적 성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개혁 성향의 교회들은 이제 구태의연한 ‘큰 교회 이데올로기’를 멀리한 채 성도 개개인의 영적 치유와 성장을 도모하고 생활 속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 교인정원제나 분가선교 등을 통해 가족적인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작은 교회 운동’이 한 예다.
최근 교계에 확산되는 분가선교의 경우 일부 대형교회의‘지(枝)성전’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 대형교회들이 중앙에서 인사 및 예산권을 독점한 채 문어발 식으로 지성전을 확장하고 있다면 분가선교는 모교회가 초기 지원만 해주고 완전히 별개의 독립교회를 세우는 형태다. 나눔을 통해 일찌감치 군살을 빼는 방식이다. 외형을 키우겠다는 욕심보다는 목회의 본질에 더 충실하겠다는 정신이 그 안에 담겨 있다.
2000년 말 서울 잠실중앙교회에서 분가한 경기 용인향상교회는 분가선교의 대표적 성공 모델로 꼽힌다. 1997년 무렵부터 주일 출석성도가 1,500명이 넘어서자 예배당의 수용능력이 한계에 이르렀다. 자연스럽게 교인들 사이에 성전 증축 논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교회는 대규모 사업비가 소요되는 증축 대신 ‘분립개척’방식을 선택했다. 증축을 위한 건축비의 3분의 1 정도의 비용으로 교외(경기 용인시 구성읍)에 전원교회를 하나 세운 것이다. 더욱이 분가한 개척교회의 담임은 19년간 모교회를 담임해온 정주채 목사가 맡았다. 분가한지 5년, 모교회에서 지원받은 200명의 개척멤버로 출발한 용인향상교회는 이제 교인수 1,000명이 넘는 중대형 교회로 놀라운 성장을 했다. 교인수가 적정규모에 이르렀다는 판단 아래 향상교회는 다시 분립개척을 준비 중이다.
기존의 대형교회 중에도 작은 교회 정신을 목회에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교인들을 10명 안팎의 작은 공동체 단위로 묶어 집중적으로 영적 훈련을 시키는 ‘소그룹 사역’이 대표적 예다.‘교회 속의 교회’로도 불리는 소그룹 사역의 확산은 외형보다는 내적 성장을 중시하는 최근 교계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신도수 5만 명의 대형교회인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는 밀도 있는 소그룹 훈련을 통해 모든 평신도의 ‘제자화’를 추구한다. 예수님의 12제자와 같은 수로 구성되는 ‘제자훈련반’ 교육은 일주일에 한번 예배만 보고 흩어지던 평신도들을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열정적인 사역자(제자)들로 바꿔놓고 있다. 제자훈련을 거친 평신도들은 다시 ‘다락방’으로 불리는 수많은 소그룹 모임의 리더로 활동하며 교회의 내적 성장을 이끌고 있다.
소그룹 사역은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의 발길도 되돌리고 있다. 교인들을 3~8명 단위의 ‘셀(Cell)’로 나누어 양육하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기쁨의교회는 300명의 출석성도 중 절반 이상이 대학생 등 청년들이다. 기쁨의교회 김원태 담임목사는 "정규 예배와 달리 셀 모임에서는 성도 간의 친밀한 교제와 헌신, 중보기도, 진지한 영성수련 등이 가능하다"며 "이를 통해 뜨거운 영적 체험을 한 젊은이들이 한국교회 부흥의 주역으로 다시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 교회성장硏 홍영기 소장 "소그룹·봉사 사역 중요"
한국교회의 바람직한 미래 성장전략은 무엇인가. 사단법인 교회성장연구소의7 홍영기 소장(38·목사·사진)은 "한국교회는 양적 성장의 측면에선 이미 심각한 정체 현상을 겪고 있다"며 "앞으로는 ‘건강한 교회’가 새로운 성장모델로 부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교회가 외형 확장에 치우치고 있다는 비판이 많은데.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탓에 젊은이와 고학력층에서 개신교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지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제 새로운 성장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됐다. 교회의 성장이 정체상태에 빠지면서 앞으로는 교인의 자연증가보다는 ‘수평이동’ 현상이 더 심화할 것이다. 이는 성장하는 교회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정체되는 교회는 계속 어려움을 겪는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
-계속해서 성장하는 교회가 되려면.
"건강한 교회가 성장한다는 명제가 부각되고 있다. 평신도를 사역의 동반자로 만들고 민주적 시스템을 구축한 교회, 하나님을 경험하는 교회, 영성적인 매력을 주는 교회는 계속해서 많은 교인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확산되는 ‘소그룹 사역’은 시사하는 바 크다.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들은 거의 예외 없이 교회 내 소그룹들이 생명력을 가지고 움직인다."
-교회의 건강성을 높이기 위한 다른 과제는.
"사회참여와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 사역도 중요하다. 앞으로는 교회가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성장도 어려울 것이다."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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