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경제부총리의 중도하차 이후 새 경제팀 수장으로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예외 없이 관료출신이란 점이다.
청와대 인재풀이 실제로 이들뿐인지, 아니면 언론의 상상력이 틀을 못 벗어나서인지는 몰라도 ‘경제부총리=관료출신’은 점점 공식처럼 돼가고 있다. 하기야 DJ정부 경제팀장 5명 전원(이규성 강봉균 이헌재 진념 전윤철)과 참여정부 출범 후 2명(김진표 이헌재) 모두 재경관료그룹에서 배출됐으니, 차기 부총리 인선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예상할 만하다.
하지만 이젠 경제부총리가 시장에서 나올 때도 됐다. 행정경험 정책추진력 등 관료출신의 장점도 있지만, 경제팀장으로서 시장을 알고 시장의 신뢰를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덕목은 없다. 이헌재 전 부총리가 낙마 순간까지도 시장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오랜 기간 시장에서 호흡해 누구보다 그 생리를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중요시기에 민간 출신은 모험’이라는 반론도 있겠지만, 시장이 OK하는 경제사령탑보다 더 좋은 경기활성화 대책은 없다. ‘문민 국방장관’얘기까지 나오는 세상에 ‘시장출신 경제부총리’가 이상할 리 없다. 1990년대 초 미국경제를 불황에서 건져내 10년 장기호황으로 이끌었던 로버트 루빈은 최초의 ‘월가 출신 재무장관’이었다.
차기 경제부총리는 재산·이력검증보다 더 까다로운 시장검증을 받아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물색해야 할 이유다. 시스템이 살아 있는데, 경제부총리 인선이 며칠 늦어진다고 경제에 큰 일이 나지는 않는다. 시장에서 눈을 씻고 귀를 열고 찾아봐도 마땅한 사람이 없다면, 그 때 관료출신으로 돌아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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