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소극장이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연극의 메카 대학로가 아닌 서울 서교동에서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등 명작들을 쏟아내며 연극계에 큰 울림을 전해 온 극장이다. 극단 산울림과 극장의 대표인 연출가 임영웅(71)씨는 11일 ‘고도를 기다리며’로 개관을 자축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학로에 극장이 있는 것이 아무래도 유리하죠. 그러나 우리 부부가 해낼 수 있는 한계점이 이곳이었지요. 장소 여건이 나빠도 좋은 질의 작품으로 승부하려 했어?%E요. 개관이후 대학로 진출은 생각지도 않았어요. 여러가지로 힘들었지만 자기 극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살던 집을 파는 등 전재산을 털어 마련한 극장이었지만, 수익은 신통치 않았다. 애당초 150여 석의 소극장을 운영하는 것은 경영측면에서는 "무모한 짓"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극장을 어렵사리 마련하고 우직하게 20년을 지켜온 것은 ‘레퍼토리 시스템’에 대한 소신 때문이다. "연극하는 모든 사람의 소망은 자기 무대를 통해 자기 말을 하는 거잖아요. 자기 극장을 가지고 있으면 대관 경쟁할 필요없이 언제든지 작품을 손질해 완성도를 높일 수가 있지요. 연기자도 익숙한 무대서 연기하면 창조성에 도움이 되고요."
이번이 열 여섯 번째 무대인 ‘고도를 기다리며’는 올해로 연출가 데뷔 50주년을 맞이하는 그에게는 자식 같은 작품이다. 그가 1969년 12월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기 그지없던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게 된 것은 우연이자 행운이었다.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친분을 쌓았던 당시 김성우 주간한국 국장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그때는 뭐가 뭔지 모르고 악전고투하며 ‘고도’를 대했어요. 이전의 연극과는 너무나 달랐지요.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내 방식대로 해석해 정신없이 막을 올렸었죠."
%C한국일보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오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살인적 연습을 하면서 낯섦을 극복해 나갔다. 그러나 한국일보 12층 극장에서 펼쳐진 7일간의 공연결과는 놀라웠다. 공연 일주일전에 전회 전좌석이 매진되었고, 이틀 연장공연까지 했다. "우리가 연습하는 중에 사무엘 베케트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세인들의 호기심이 집중되었죠. 아일랜드 출신이면서도 프랑스어로 작품을 쓴 베케트의 정체성 때문에 영문학도와 불문학도의 관심도 몰렸구요."
그러나 단지 행운만이 그의 성공을 불러온 것은 아니었다. ‘부조리극’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세계적 ?%AП抹脂逵? 마틴 에슬린은 88년 방한해 공연을 본 후 "동양적 시각으로 베케트의 작품세계를 정확히 해석했다"는 호평을 했다. 89년 아비뇽연극제에 참가하고, 90년 더블린연극제의 초청을 받아 한국 연극의 위상을 높였다. 그만큼 임영웅표 ‘고도’는 완성도가 뛰어났다. "누구는 창작극이 아니라며 평가절하하지만, 저는 생각이 달라요. 어느 단계까지는 우리가 서양작품을 들고 해외에 나가야 대접 받고 평가 받을 수 있지요. 우리의 존재를 세계가 인식한 뒤 창작극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산울림이 문을 열고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이 지난만큼 연극계도 많이 변했다. ?%榴? "그동안 관련학과도 많이 생기고, 영화 방송 등 자매 예술쪽도 많이 발전해 연극계에 좋은 인재들이 활동한다"며 지난 시간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시대풍조인지 모르지만 예술가 기질보다는 사업가 기질이 더 득세해 ‘연극정신’은 더 퇴색했다"고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연극이 관객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 생각해야 해요. 관객이 극장문을 나설 때 ‘이 연극 보기를 잘했구나, 이 다음에 다시 찾아야 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야 연극인의 보람이 있는 거죠. 삶에 활력소를 주고 결국 사회발전에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이 ‘연극정신’입니다."
‘연극정신’은 그가 산울림을 지탱해 온 힘이자, 노익장을 발휘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36년이 지났는데 저에게도 ‘고도’는 오지 않고 있어요. 어려운 환경을 헤쳐나가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공연은 5월8일까지. (02)334-5915
라제기기자 wenders@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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