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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이름 바로 세우기

입력
2005.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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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명성황후’나 ‘조선’이라는 말이 잘 쓰이지 않았다. ‘민비’나 ‘이조(李朝)’라는 말이 보편화해 있었다. 그런 명칭들은 일제가 우리를 비하하기 위한 말임을 우리 사회가 자각하고 바로잡기까지는 몇십년이 걸렸다. 일본은 조선인이 황후, 조선 등 격식 있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우리도 별 저항 없이 이를 받아들인 결과다. 광복 이후 일제가 왜곡한 많은 명칭이 본디의 이름으로 고쳐졌다. 그러나 또한 적지 않은 일본식 잔재가 남아 정서적으로 껄끄럽다.

■ 시민단체 녹색연합은 최근 백두대간 주변의 22개 지명이 일제에 의해 왜곡된 채 지금도 잘못 쓰이고 있다고 밝혔다. 가장 많은 예는 ‘왕’이던 지명을 ‘황(皇·일본 천황을 의미)’이나 ‘왕(旺·日+王)’으로 바꾼 경우라고 한다. 속리산 천왕봉(天王峰)이 천황봉(天皇峰)으로, 강원 정선의 가리왕산(加里王山)이 가리왕산(加里旺山)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다른 예로, 서울 한강가의 흑석동에는 ‘명수대(明水臺)’라는 일본인 별장이 있었다. 해방 후에도 이곳은 명수대로 불리고, 학교명과 교회명에도 붙어 사용되고 있다.

■ 지명뿐 아니라, 세시명(歲時名)에도 일본 잔재는 남아 있다. 음력설을 쇠지 않는 일본은 우리에게도 이를 강요했다. 일본의 새해 첫날은 ‘쇼가쓰(正月)’라고 한다. 우리는 ‘신정(양력설)’과 ‘구정’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마침내 설을 민족 명절로 재추대했다. 잘 한 일이지만, 아직도 모든 달력에는 ‘신정’이라는 일제 잔재의 명칭이 살아 있다. 북한에서는 해방 후 새해 첫날을 ‘설’로 즐기며 이틀간 쉰다. 음력설은 1988년에 부활돼 사흘간 쉬는데 ‘설 명절’로 지칭되고 있다.

■ 우리에게 새해 첫날이 지닌 상징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그 명칭에서 일본 흔적을 버리고 영어식이지만 소박하게 ‘새해의 날’로 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고 쓴 적이 있지만 당국은 반응이 없다. 훼손된 명칭을 바로 세우지 못하는 것은 관료적 무신경의 소치다. 놀라운 것은 만만디로 알았던 중국인의 변화다. 중국 언론들이 최근 서울시의 요청에 따라 서울을 (한청) 대신 (서우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의 민첩성과 적응력이 부럽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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