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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드라마여, 운명의 장난을 거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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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드라마여, 운명의 장난을 거부하라

입력
2005.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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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종영한 KBS2 ‘쾌걸춘향’은 꽤 ‘신기한’ 드라마였다. 정말 놀랍게도, 이 드라마는 불치병 죽음 출생비밀 형제(혹은 친구)간 삼각관계 따위의 한국 드라마들이 즐겨 써온, 비극적인 설정을 하나도 쓰지 않은 채 두 남녀의 사랑싸움만으로 인기를 모았다. 물론 이전에도 MBC ‘옥탑방 고양이’, KBS2 ‘풀하우스’처럼 비슷한 성격의 드라마들이 있었지만 별다른 톱스타나 이슈가 없었던 ‘쾌걸춘향’의 성공은 이런 류의 드라마가 확실히 대중에게 호응을 얻고 있음을 증명했다.

이는 한국의 트렌디 드라마들이 드디어 ‘운명’을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운명적인 설정들은 그 자체로 드라마의 성격을 규정한다. 캐릭터들이 비극적인 운명을 지고 살아가니 극이 어두워지고, 드라마의 중심은 주인공이 죽느냐 사느냐, 혹은 사랑이 이루어지느냐에 놓이게 된다. 그만큼 스토리는 뚜렷하지만, 반복되는 설정에 시청자들은 이제 익숙함을 넘어 ‘또?’라는 반응을 보인다. 결말이 예상되고, 그만큼 드라마에 몰입하기 힘들다.

막강한 스타 파워를 자랑한 MBC ‘슬픈연가’나 SBS ‘봄날’이 기대만큼의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한 것은 후반부로 갈수록 진부해지는 스토리 탓이 크다. 제대로 된 비극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KBS2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증명하듯이 독특한 캐릭터, 극단적인 스토리, 뛰어난 영상미까지 모두 동원해서 시청자들에게 숨 쉴 틈 없는 비극의 힘을 전달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흐름이 깨지면 시청자들은 스토리의 진부함을 깨닫는다.

반면 ‘쾌걸 춘향’처럼 운명을 벗어난 드라마들은 선택의 폭이 넓다. 운명을 벗어난 주인공들에겐 그 순간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고, 그 마음은 시시각각 변한다. 그래서 스토리보다 캐릭터가 더 중요하고, 캐릭터를 끊임없이 부딪치게 할 수 있다면 어?%E떤 스토리든 사용한다. 심지어 ‘쾌걸춘향’은 느닷없이 드라마 패러디를 등장시키기도 했지만, 이미 캐릭터에 몰입한 시청자들은 즐거워했다. 드라마가 과거의 설정을 벗어나자, 새로운 재미의 코드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새로운 드라마의 모델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직 설정만을 밀어붙인 드라마들이 캐릭터의 생명력을 잃고 뻔하게 흘렀다면,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들은 스토리의 일관성이 없거나 진부한 스토리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쾌걸춘향’에서도 주인공들을 위기에 빠뜨린 것은 악녀와 악남, 혹은 조폭같은 진부한 설정들이었고, SBS ‘파리%의 연인’이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다가 결국 출생비밀로 마무리하면서 엉성한 엔딩을 보여준 것은 한국 드라마가 참신한 스토리를 개발하는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연 드라마는 운명에서 벗어난 새로운 캐릭터들에게 걸맞은 새로운 스토리를 보여줄 수 있을까. 그것은 한국 드라마가 한국 영화와 같은 ‘웰메이드’의 길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마지막 한 수일지도 모른다.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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