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남자의 의뢰를 받은 심부름센터의 채무변제 독촉을 못 이겨 유명대학 교수 부인 박모(50)씨가 지난달 28일 자살한 사건(3월1일자 A9면 보도)은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박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청부살인하려다 계획이 들통나자 자살한 사건으로 밝혀졌다. 박씨는 남편 몰래 다단계판매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진 빚을 갚지 못하자 경기지역의 한 병역특례업체에 근무 중인 아들 김모(24)씨와 공모해 심부름센터에 남편을 죽여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구속된 심부름센터 운영자의 통화내역 조회 결과를 근거로 아들 김씨를 추궁한 끝에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내고 7일 김씨를 존속살인 예비음모 혐의로 구속했다.
구속된 아들 김씨의 경찰 진술에 따르면 자살한 박씨는 다단계 판매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억대의 빚을 지고 채권자들의 빚 독촉에 시달려왔다. 뒤늦게 부인의 채무를 알게 된 남편 김모(51) 교수는 지난해 11월 아파트를 담보로 1억3,000만원을 대출받아 빚을 갚아주었지만 박씨에게는 남편이 모르는 8,000만원의 빚이 더 있었다.
박씨는 고민 끝에 가족 공동 명의로 교통상해보험과 화재보험 등 1억1,000만원 상당의 보험엥에 가입한 뒤 아들에게 범행을 제의했다. 평소 돈 관리에 엄격해 어머니를 심하게 질책해 온 아버지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아들은 어머니의 제의에 동의했고, 직접 인터넷 심부름센터 운영자에게 접근해 "아버지를 살해하거나 폭발물을 보내주면 장례를 치른 뒤 3일 안에 1억5,000만원을 주겠다"며 착수금으로 240만원을 입금했다. 김씨는 이후 아버지의 출·퇴근 경로와 주차위치 등 상세한 정보를 심부름센터에 알려주었고, 사제폭탄을 전달할 방법도 의논했다.
그러나 모자의 무서운 음모는 심부름센터 운영자가 다른 청부살인 예비 사건으로 2월 말 경찰에 구속되면서 전모를 드러냈다. 경찰은 심부름센터 계좌에 돈을 입금한 의뢰인들에 대해 소환조사를 벌였고,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박씨는 경찰조사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의 명문 K대를 졸업한 아들 김씨는 경찰에서 "돈 문제로 힘들어 하는 어머니에 대한 동정심으로 범행에 가담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김씨의 아버지는 "내 아들이 그랬을 리 없다"며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한편, 아들을 위해 변호사까지 선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아들 김씨의 단독 범행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씨의 진술과 숨진 박씨가 자신의 인터넷 ID로 심9부름센터 홈페이지에 접속한 기록 외에는 박씨가 직접 범행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또 박씨가 남편에게 숨겼다는 8,000만원의 채무는 아들의 진술 외에는 물증이 나오지 않고 있다.
심부름센터에 당초 접수됐던 의뢰가 "부부 모두를 살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는 점도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결국 김씨가 어머니의 이메일을 도용해 부모를 모두 청부살인하려 했고, 어머니 박씨는 경찰조사를 통해 이를 알고 아들의 범행을 숨겨주기 위해 자살을 택했을 수도 있다.
전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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