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생들은 숫자에 관심이 많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몇 백 대 일이고 어느 대기업 초봉이 몇 천 만원을 넘는지는 초미의 관심사이다. 하지만 이라크에서 한 달 동안 폭격으로 사망하는 어린이가 몇 백 명이고 국내 비정규직 노동자의 최저 임금이 몇 십 만원인지는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이런 인식의 편중은 어떤 이유에서 올까. 자신의 장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쪽은 전자에 훨씬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학생의 인식이 개인의 영역을 넘어 사회 문제에 미치지 못한다면 이는 자신에게 이미 주어진 권리에 따르는 책임에 충실치 못하는 것이다. 대학에 다닌다는 것은 사실 특권에 가깝다.
인적 자본을 구성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교육’, 그것도 최고의 고등 교육기관인 대학에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대학생이 이미 그 신분 자체로 사회적 권리의 수혜자임을 말한다. 이는 실제로 고교 중퇴자들의 빈곤율이 대학 졸업자들에 비해 많게는 10배 이상임을 보면 알 수 있다. ‘학생이면 공부나 할 것이지?’‘공부’는 무엇일까. 토익점수를 올리기 위한 영어학습? 취업에 유리한 자격증 취득 준비·자아형성을 위해 문학작품이나 사회과학서적을 탐독하는 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기를,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실천에 옮겨지지 않는 학문은 죽은 학문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많이 다르다. 국적, 종교, 재력 등등에 따라 인간이 지극히 불평등한 대접을 받고 있는 현실과 사회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나 개선하려는 실천적 노력이 없다면 우리가 배운 것은 죽은 학문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도서관에서 혹은 강의실에서 보고들은 것들이 실천에 옮겨질 때만이 진정한 공부라 할 것이다.
개인이 스스로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대학생이 이미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신분임을 상기할 때, 현존하는 많은 사회적 현안과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은 신분적 혜택에 뒤따르는 책임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임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3월2일자 학생논단 (임한솔·독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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