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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아름다운 행정도시 세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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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아름다운 행정도시 세울 때

입력
2005.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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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11월, 옛시조를 제목으로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현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을 놓고 찬반논쟁이 막 달아오르기 시작한 초입이었다. 섣부른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글이었다. 지금은 수도이전보다는 남북통일과 그 후의 한반도 구상에 힘을 쏟을 때이며, 신행정수도가 세워진다면 수도다운 창연한 문화적 품격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 주된 반대 이유였다.

그 후로도 지루한 논쟁이 펼쳐졌다. 결국 헌법재판소에 가서야 끝장이 날 정도로 중대한1 논란거리이기도 했다. 헌재 결정 이후 행정수도이전 차원에서 행정중심도시 건설로 축소되어 가까스로 방향이 잡혔다. 경제사회 관련 12개 부를 충남 연기·공주로 옮기고, 청와대·국회·대법원과 6개 부를 서울에 남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일부 의원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아직도 마침표가 찍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논쟁을 거둘 때가 됐다. 본디 이 논쟁은 국가적 목표에 정치적·지역적 이해가 얽히면서 소모적으로 전개되었다. 이제 원래의 계획이 크게 축소됨으로써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격(國格)을 말해주는 고도로서의 수도 서울은 그대로 남고, 그 바탕 위에서 통일 후의 온전한 국토 가꾸기를 꿈꿔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국토균형발전과 수도권 인구과밀 해소라는 대의를 살리게 되었다. 어렵사리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된 셈이라고 정리해 본다.

이제는 제2의 수도에 해당할 새 행정도시의 미학을 생각할 때다. 수도 서울을 능가하는 아름답고 정겹고 싱그러운 도시를 건설해 보자. 이 신도시는 기능적·문화적으로도 모범이 될 만큼 우수해야 한다. 새롭되 화려하고 번쩍거리지 않는 도시, 그윽하고 운치 있는 도시, 문화적 기품과 건축적 에스프리가 숨쉬는 도시를 가꿔 보자.

대체로 유럽 도시의 우아함과 균제미(均齊美)는 건축적 문맥에서 온다. 유럽의 시민과 건축가들은 시선을 끌기 위해 저 혼자 잘 난 체 하는 건물을 경멸했다. 그들은 옆 건물과의 조화를 이루는 건축적 문맥과 전통을 고수해서 오늘에 이른다. 우리 경주나 서울 등의 한옥마을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도 기와 지붕이 만들어내는 정연한 질서와 조화에서 비롯된다. 신도시를 한옥으로 채우자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21세기적 현대성 안에서 건축적 문맥, 신구(新舊)의 조화,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된 건물이 없는 도시는 과거를 갖지 않은 인간과 같고, 이마에 주름이 없는 사람은 정신의 이력이 없는 사람과 같다고 한다.

신도시에서는 그 놈의 간판부터 줄여 보자. 단언하건대 우리나라처럼 간판으로 지저분해진 국가가 없다. 나라 곳곳이 간판으로 더럽혀졌거니와, 일산 분당 등 신도시에서도 천박하고 탐욕스러운 대형간판의 시각 공해가 여전하다. 산뜻한 새 도시를 세우고도 간판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행정당국의 무사안일과 나태에 절망과 분노를 느낀다. 간판에 관한 세계보편적 기준은 업소 당 1개의 간판이고 3㎡ 이하의 크기이며, 대부분 원색이 아닌 중간색이 사용된다. 국내 간판은 70% 가량이 불법 광고물이다. 신도시 건설을 계기로 간판응? 엄격히 규제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피라미드는 이집트에만 있지 않다. 파리 루브르박물관 안에도, 미국 남부의 도시 멤피스에도 새로 만든 이 금자탑들이 참신한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역사가 짧은 미국은 다른 도시에도 유럽 조형물을 모방해서 세운 것이 많다. 10년생 나무 열 그루보다, 100년 된 나무 한 그루가 더 많은 위안과 기쁨을 준다. 신행정도시에 예스런 제2의 숭례문이나 첨성대 등 전통 건축물을 다시 세우는 것도 바람직하다. 전통과 현대의 감수성을 조화시켜 도시미학의 한 전형을 완성해야 한다. 졸속으로 흐르지 않고 자부심을 느낄 만한, 제대로 된 행정도시를 건설하자. parkrb@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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