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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 공무원서 최고위직까지 승진/ 전문성·정성 있으면 하늘의 별도 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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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 공무원서 최고위직까지 승진/ 전문성·정성 있으면 하늘의 별도 딴다

입력
2005.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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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9급 고졸 출신 공무원들이 고위직에 잇따라 발탁되면서 공직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9급 공채로 공직사회에 들어가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하기까지 25년, 여기서 다시 ‘공무원의 꽃’인 1급까지는 또 20년이 걸린다. 그러므로 9급 공무원이 1급 이상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7일 발매되는 ‘주간한국’은 최근 이처럼 공직사회의 신화로 속속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대표적인 두 사람을 소개한다.

■ 이기우 총리 비서실장/좌천 경험뒤 이 악물고 노력 "모든 인연 정성다해 재산으로"

"고졸 9급 출신이었기에, 역으로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이기우 총리 비서실장(57·차관급) 지방의 9급 교육 공무원 출신인 그가 일궈낸 오늘은 37년 동안 스스로의 부족함을 잊지않은 하루하루가 쌓여 만든 결과다. 이해찬 총리와의 인연은 이 총리가 교육부 장관에 부임한 1998년에 시작됐다. 당시 이 실장은 교육부 교육환경개선 국장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내세워 국립대나 지방 교육청으로 전보해 달라고 건의했으나 오히려 이 총리는 그를 교육부 서열 3위인 기획관리실장으로 점 찍었다. 이 총리는 일과 사람에 대해 지극한 정성을 쏟는 그를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로까지 극찬한 바 있다.

경남 거제도의 빈농 출신이지만 명문 부산고에 입학했다. 그러나 객지에서의 궁핍한 고학 생활에 병까지 얻어 4년 만에 졸업했고, 건강 탓에 대학 진학도 실패했다. 그리고는 친구 따라 치른 9급 시험에 덜컥 붙어 부산 대연동 우체국으로 발령 받았다. 그러다 아무래도 이 일은 아니다 싶어 다시 9급 시험을 치러 거제군 교육청에 배치됐다.

그 때 뼈저린 경험을 했다. 대입준비를 한답시고 대충 자리만 지키다 좌천되는 수모를 당했던 것. 이 사건은 그에게 쓰디쓴 약이 됐다. "내 기준으로 ‘1등 공무원’이 되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대학 꿈을 접은 것은 물론이다.

이 실장 별명은 ‘발치수 320㎜ 마당발’이다. 89년 교육부 과장 때 국회에 파견 근무를 하면서 얻었다. 당시 국회는 여소 야대로, 청와대에 안 통하는 민원은 모두 국회로 집합하던 때였다. 특히 민원이 많기로 소문난 교육 관련 분야 민원의 국회 통로가 바로 그였다. 당시 그의 정성을 다한 수완은 " 이기우에게 부탁해서 안 되면 애당초 안 되는 일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휴일 없이 뛰어다닌 그 당시를 그는 "옷깃을 스치는 인연도 내가 할 수 있는 정성을 다 한 것응? 큰 재산이 됐다"고 술회했다.

조신기자 shincho@hk.co.kr

■ 이종규 재경부 세제실장/ 고졸·비고시 출신으론 최초 "하찮은 일이라도 전문성을"

이종규 재정경제부 세제실장(57·1급) 역시 9급 고졸 출신이다. 비고시 출신이 세제실장이 된 것은 재경부 사상 초유의 일인데다 9급 공무원이 엘리트 관료들이 즐비한 재경부에서 1급까지 오른 것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운 일. 그래서 지난해 3월 이 세제실장의 승진은 전체 공무원 사회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한 ‘사건’이었다. 충남 홍성고를 졸업하고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인천세무서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지 꼭 40년 만이었다.

이 실장은 1947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홍성고를 졸업하고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인천세무서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재무부와 국세청의 주요 부서를 오가며 국세기본법 제정과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및 토지초과이득세 추진에 참여하면서 어느 틈에 세제에 관한 한 최고 전문가로 자리 잡았다. "가는 곳마다 일이 많았지만 경중에 관계없이 성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새로운 일, 남들이 하지 않은 일들은 관련 자료를 찾고 내 나름대로 해법을 찾는 가운데 ‘전문성’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후 재경부 세제실 소비세 과장, 국세청 법무담당관(부이사관), 대전지방국세청장 등을 거쳐 참여정부 출범 후에는 재산소비세 심의관으로 김진표 경제팀에 합류, ‘상속·증여세 완전 포괄주의’ 입법 작업, ‘10·29 부동산 투기 대책’ 등 굵직한 현안을 추진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이 실장은 공직 생활에서 79년 사무관이 됐을 때와 85년 요즘도 세제를 공부하는 학생 및 공무원들의 주요 참고서가 되고 있는 책 ‘법인세법 해설’을 발행했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말한다. 30년 넘게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그는 "공무상 하찮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 하고 자기 계발의 노력을 기울이면 ‘전문성’을 터득하게 되고 어느 누구로부터도 인정 받게 된다"며 ‘실력’이야말로 공무원의 도리이자 성공의 요체임을 강조했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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