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우익잡지에 일제의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는 내용의 기고문을 실어 파문을 일으켰던 한승조(75) 고려대 명예교수가 6일 명예교수직을 사퇴했다.
한 교수는 이날 밤 늦게 언론사에 배포한 사과문에서 "일본 ‘세이론(正論)’지 4월호에 게재된 ‘공산주의, 좌파사상의 뿌리를 둔 친일파 단죄의 우’ (원제목: 친일행위가 바로 반민족 행위인가) 라는 글에서 적절치 못한 단어와 표현을 사용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밝히고 "책임을 깊이 통감해 고려대 명예교수직을 사임하며, 향후 모든 대외활동을 삼가하겠다"고 사퇴의사를 밝혔다.
한 교수의 한 측근은 이날 저녁 "한 교수가 이번 사태로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고 있어 조만간 중대결심을 할 것 같다"며 사퇴 의사가 있음을 밝혔고 고려대 측도 7일 오전 개최할 예정이었던 긴급처장회의를 이날 오후 취소, 한 교수의 자진 사퇴를 간접적으로 암시한 바 있다.
한 교수는 독도문제 등으로 대일감정이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우익 월간지 세이론 에 "일본의 식민지배는 오히려 대단히 다행스럽고, 원망할 게 아니라 오히려 축복해야 하는 것이며 일본인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라는 내용을 기고한 사실이 4일 알려지면서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 같은 주장이 알려지자 한 교수가 공동대표로 있는 자유시민연대 비상대책위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라 해도 나라와 민족을 억압한 일제 식민지 시기를 미화할 자유까지 보장 받을 수는 없는 법"이라며 "한교수의 공동대표직은 물론 회원자격까지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임광규 변호사, 송정숙 전 보사부 장관 등과 함께 이 단체의 공동대표직을 맡고 있다가 기고 사실이 알려진 직후 성난 네티즌들의 비난 글이 쏟아지면서 이 단체 인터넷 홈페이지(www.freectzn.or.kr)가 다운되는 등 파문이 일자 4일 대표직을 사퇴했다.
고려대도 4일 해명자료를 통해 "한교수가 이미 10년 전 학교를 떠난 명예교수 신분이므로 학교와는 관계가 없다"며 이번 사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려 했다. 그러나 학교 홈페이지는 물론 각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한 교수와 같은 역사의식을 가진 인물에게 ‘명예교수’ 타이틀을 준 고려대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지고, 동문들 사이에서도 한 교수의 ‘명예교수’ 자격 박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당초의 방침을 바꿔 7일 임시처장회의를 열기로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한 교수가 명예교수직을 사퇴하더라도 지식인으로서 그가 한 이번 발언의 충격을 완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며 "독립유공자 등에 사죄하는 등 진정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 지만원씨, 한교수 옹호글 홈피에 올려
한편 군사평론가 지만원씨는 자신의 홈페이지 ‘시스템클럽’(www.systemclub.co.kr)에 올린 ‘한승조 교수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는 글을 통해 한 교수를 옹호하고 나서 관심을 끌었다. 지씨는 "선진국을 배격한 채 문호를 걸어 닫고 당파싸움을 일삼는 못난 조선이 열강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기적"이라며 "(조선은) 누구에게 먹히든 먹히게 돼있었다"며 한 교수의 논리를 적극 지지했다.
지씨는 이 글에서 "여당이 과거청산을 내걸고 국민에너지를 비생산적인 방법으로 소모하고 있는 동안 한국은 경제식민지가 되어가고 있다"며 "이런 사람들이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많은 정적들을 모함, 모략하여 귀양 보내고 죽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씨는 또 "자신과 다른 생각을 표현했다고 해서 여론재판을 하는 나라는 민주국가가 아니라 원시집단"이라며 "일본인들도 한교수의 글을 다양한 시각 중 하나로 보지 한국인 전체의 시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씨는 "한국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는 정상적인 외교가 아니며, 이런 한국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전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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