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도 잊지 않고 있는 1990년 2월, 나는 그 해 겨울 내 고향에 내린 전설적인 폭설을 잊을 수가 없다. 아니, 내 눈으로 직접 본 게 아니니까 전설적이란 말을 쓸 수 없다 하더라도, 그렇게 많고도 많은 눈이 내렸는데도 혼자 서울에 남아 ‘우리 시대 최고의 눈’을 보지 못한 쓸쓸한 소외감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눈이 내리던 첫날 나도 설국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 쪽은 눈이 내리자마자 이미 교통이 두절되어버리고 말아 그 전설적인 눈 소식을 나는 대관령 아래의 아버지와 강릉 시내에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로만 들어야 했다.
아버지는 처마에 눈이 닿아 김칫독을 묻은 곳까지 간신히 굴을 팠으며, 뒷산의 아름드리나무들이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나가는 소리가 밤새 포성처럼 골짜기를 흔들었다고 했다. 친구는 지금 자기 집 이층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눈들이 골목에 쌓여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이 창문 위로 보이며, 길이 미끄러워 발 밑만 보고 걷다 보면 늘어진 전화줄이 목에 턱턱 걸린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겨울이면 눈 속에서 자랐으면서도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 ‘우리시대 최고의 눈’ 이야기를 직접 보지 못하고 귀로 듣기만 했던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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