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성장을 위한 경제정책 개혁'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1인당 GDP를 높이기 위한 구조개혁 정책의 첫 번째 권고로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고용보호 완화를 들었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고 노동력 중 비정규 노동자 비율 증가를 막기 위해서 정규직 단체해고 조건이 완화되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그런데 OECD는 2004년에 출간한 '고용전망보고서'에서 고용보호법제의 고용보호 정도를 국가별로 평가한 결과 우리나라가 정규직 단체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정도에서 28개 국가 중 3위를 기록하였다고 보고하였다. 트집 잡아 말하자면 이 순위를 1~2위로 만들어야만 우리나라 1인당 GDP가 올라가는 것이 된다.
이번 보고서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단선적으로 경제 및 고용 성과를 높인다는 기존의 논의를 수정하고 있는 최근의 OECD 내 흐름조차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태리나 스페인, 네덜란드 등에서 일방적인 노동시장유연화가 초래한 부작용을 인식하면서, 노동시장 유연화는 거시경제운영이나 사회보장제도 등 다른 제도들이 보완되어 하나의 패키지 제도로서 운영될 때만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이 OECD내 최근 흐름이다.
OECD의 개별 회원국에 대한 보고서는 국내의 공무원과 전문가,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과 자료를 수집하여 OECD의 자체 기준에 따라 평가하여 제출된다. 따라서 위와 같은 정책 권고는 OECD의 기본 철학과 정책 방향에도 기인하지만, 국내 여론 형성 집단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또 이 OECD 보고서는 아무런 검토나 평가 없이 재경부를 통해 모든 언론에 공개된다. 이는 다시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 완화가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
정말 우리나라는 정규직의 해고가 어려운 나라인가. 근로기준법에서 정리해고 조항을 완화하면 해고가 쉬워지는가. 정규직 해고가 쉬워지면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투자가 확대되고 경제의 성장동력이 회복될 것인가. 우리는 너무도 쉽고 단순하게 정규직 해고가 어려워서 기업의 비용부담이 커지고 투자가 안되고 비정규직만을 활용한다는 단순한 논리에 수긍하고 마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의 해고율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 대부분의 중소기업 근로자나 비정규직 근로자의 경우 고용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해고율이 대단히 높다. 대기업 노조조직사업장 정규직의 경우 정리해고가 어렵다고 하나, 권고사직이나 명예퇴직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고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국민은행이 3,000여 명을 명예퇴직시킨 일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다. 법을 바꾼다고 해서 해고를 더 확대할 여지는 크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않은 이유는 대기업이 자신의 정규직 노동자를 유연하게 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같이 직무 중심의 횡단적 노동시장에서는 기업 내 직무간 이동이 쉽지 않아 해고와 중도채용 관행이 발달된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기업 내 인력이동이 중심이 되는 종단적 노동시장 구조 하에서는 외부인력의 유출입이 경직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직무 중심의 노동시장 구조가 형성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거나, 기업 내 인력이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업 내 인적자원관리가 선진화되어야 한다.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개별 기업들이 단기주의적 행태와 저숙련 함정에 빠져있다면, 기업들이 고숙련 인력의 개발과 보유를 유인하도록 하는 시장 외적인 제약은 유익한 사회적 제약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고려 없는 노동시장 유연화 논의는 노동조합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로 간주되어 불필요한 노사갈등을 유발하고 끊임없는 소모적 논쟁의 원인만 될 뿐이다.
전병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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