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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믿음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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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믿음의 위기

입력
2005.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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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개국 공신인 정도전은 도읍인 한양성을 건설하면서 동서남북에 흥인지문(興仁之門) 돈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 홍지문(弘智門)의 4대문을 두었다. 인(仁)을 일으키고, 의(義)를 두터이 하며, 예(禮)를 받들고, 지(知)를 널리 편다는 유교 이상을 담았다. 그리고 한 가운데 둔 종루에는 보신각(普信閣)이란 이름이 붙었다. 인의예지신 오상(五常)을 동서남북 중에 배치한 것은 오행의 방위론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지만 오상의 으뜸인 신(信)의 방위에 하필이면 종루가 자리잡은 것은 따로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 보신각 종이 알리는 시각에 따라 4대문이 열리고 닫혔으니 인의예지를 믿음이 주재함을 상징했다. 종소리가 알리는 시각은 백성의 잠들고 깸의 기준이 됐다. 그런데 보신각 종은 광화문 종루가 먼저 시각을 알리면 이를 받아서야 울렸다. 실용적 시각이 임금이 살던 궁궐에서 보신각을 거쳐 전국으로 알려졌듯, 으뜸 윤리인 믿음의 출발점은 바로 임금이어야 했다. 특히 백성을 깨워 일하게 하기 위한 새벽 종소리는 ‘믿음이 서고서야 백성을 부릴 수 있다(信以後勞其民)’는 논어(論語)의 가르침을 그대로 형상화했다.

■ 옛사람들은 개인의 인성 차원에서는 물론, 사회 안정과 국가 발전을 위한 기본 윤리로서도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옛날 얘기만도 아니다. 현대 정치이론도 ‘신뢰성 위기’를 정치 불안의 핵심 요인으로 보고 있으며, ‘IMF 위기’나 ‘개인신용 위기’ 등에 따른 경제침체 경험에서 보듯 경제에서도 믿음은 핵심 변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거론되고 있는 다양한 위기의 본질도 믿음의 위기에 다름 아니다.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 정책 담당자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반대 주장의 배경에 대한 의혹이 무성하다.

■ 가장 큰 문제는 믿음의 발신지여야 할 청와대가 안팎으로 믿%F음을 흔들고 있는 점이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한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 다수가 부동산 투기 의혹을 기울이는 경제부총리를 정책 일관성이란 이유를 들어 감싸고 있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스스로 ‘정부 차원의 과거사 언급은 없다’고 일본에 밝힌 대통령이 ‘배상’을 언급하고 나섰다. 안팎으로 믿음을 흔드는 모습에 ‘믿음이 돼지나 물고기에도 미치는(信及豚魚也)’ 역경(易經)의 세계가 한결 아득해 진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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