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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보름달의 전설 - 살인자 도둑, 성자를 구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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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보름달의 전설 - 살인자 도둑, 성자를 구원하다

입력
2005.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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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것이 그림책이라면, 이 책은 그림책이다. 그러나 그림책을 아이들이나 읽는 책으로 생각한다면, 이 책은 그림책이 아니다."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1929~1995)가 쓴 그림책 ‘보름달의 전설’을 번역한 김경연씨는 ‘옮긴이의 말’에 이렇게 썼다. 아이들보다는 어른과 청소년을 위한 그림책이기 때문이다. 참된 진리는, 참된 깨달음은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묵직한 주제가 그렇고, 신비스러우면서 아득한 깊이를 지닌 그림이 또한1 그러하다. 짧은 이야기에 긴 울림이 담겼다.

어른을 위한 동화 ‘모모’ ‘끝없는 이야기’ 등으로 잘 알려진 미하엘 엔데. 그의 작품들은 자유로운 상상과 진지한 사색, 문학적 향기로 많은 청소년과 어른들을 사로잡아왔다. ‘보름달의 전설’에서 엔데의 철학적인 글은 비네테 슈뢰더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그림을 만나 더욱 강하게, 그러나 조용히 폭발한다.

이 그림책은 진리와 영원을 추구하는 성자의 이야기다. 세상을 등진 채 동굴에 은둔하던 성자는 언젠가부터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자 마침내 찾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조차 집착이 빚어낸 허상임이 드러나면서,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놀라운 깨달음으로 성자를 이끈 것은 제자로 받아들인 살인자 도둑이다. 평생 방탕하게 살았고 죄를 뉘우칠 줄도 모르는 도둑이 스승이 본 대천사가 실은 나쁜 정령의 장난임을 알아보고 오히려 성자를 구원하는 것이다.

슈뢰더의 그림은 상징적이고 초현실적이다. 명상에 잠긴 성자의 평화는 부드러운 녹색에 휩싸여 있고, 대천사가 날아가는 밤 하늘은 꿈결 같은 푸른 빛이며, 죄에 물든 도둑의 악행은 초록과 빨강이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고운 사포 같은 질감이 느껴지는 바탕 위에서 빛과 어둠은 섬세하게 섞이고, 그림자는 침묵으로 말한다.

성자의 헝클어진 머리칼이나 바위의 거친 표면 등 세부 묘사는 사실적이지만, 전체 분위기는 꼭 꿈 속을 거니는 것만 같아 한참 들여다보게 만든다. 끝모를 상상의 문을 여는 이 그림들을 마음껏 즐기시길.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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