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이나 어린 후배들 앞에서 강의를 하려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합니다. 선배로서 여러분의 대학생활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직 대학총장으로서 이례적으로 정규 강좌를 맡은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4일 신학기 첫 강의에 나섰다. 신입생을 대상으로 신설된 '프레시맨 세미나(Freshman Seminar)' 67개 강좌 중 '나와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한 과목을 맡은 정 총장은 "동료 교수들에게 하나도 떨리지 않는다고 큰소리치고 왔는데 막상 여러분들 얼굴을 보니 목소리가 떨린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정 총장이 강의에 나선 것은 총장 취임 직전인 2002년 봄학기 경제학부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화폐금융론' 이후 2년 반 만이다.
서울대가 올해 첫 도입한 프레시맨 세미나는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수강인원 10명 안팎의 소규모 강의로 교수와 신입생이 얼굴을 맞대고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면접식 밀착강의. 정 총장의 강의는 프레시맨 세미나 전 강좌 중 가장 많은 인원인 16명이 수강신청을 해 최고 '인기'를 보였다.
강의실과 달리 10평 남짓한 세미나실에서 진행된 강의는 첫 수업답게 강의 소개와 학생들의 자기 소개 등으로 꾸려졌다. 정 총장은 "윌리엄 브레이트와 배리 허쉬 공저의 ‘경제학의 제국을 건설한 사람들’과 조 순 전 교수와 내가 함께 저술한 ‘경제학원론’을 교재로 매주 1시간30분씩 강의를 진행하겠다"며 "시험 없이 출석과 발표점수로만 학점을 매기겠다"고 강의 개요를 소개했다.
정 총장은 이날 강의에서 "왜 경제학을 공부하게 됐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원래는 당시 가장 인기가 있었던 화학공학과를 가려고 했는데 고등학교 때 교정에 있는 나무 이름을 하나도 몰라 생물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문과로 방향을 돌리게 됐다"고 유머러스하게 답변한 후 "고교 1년 선배인 김근태 의원 덕분에 경제학과에 가게 됐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김 의원이 법대를 가겠다는 정 총장에게 "너 정도면 고시야 패스하겠지만 우유부단하고 거짓말 못 하는 성격에 판사나 검사, 변호사를 할 수 있겠냐"며 경제학과를 권유했다는 것. 정 총장이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 경제학과에 왔다는 건 다 거짓말"이라고 경제학 입문 동기를 고백하자 학생들 사이에선 웃음이 터졌다.
강의를 들은 사회과학대 윤소윤(19)양은 "총장님께서 단순히 경제이론을 강의하시는 게 아니라 경제학이 무엇이고, 경제학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신다고 해 수강신청을 했다"며 "어렵게 느껴졌던 총장님과 나란히 앉아 강의를 들으니 경제학이 보다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소감을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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