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공예
손영학 글 · 나무숲
아파트가 대표적인 주거공간으로 자리잡으면서 부엌은 주방이 되고 마루는 거실로 이름과 기능을 바꿨다. 주방에는 밥상 대신 식탁이 놓이고 마루 한 구석을 차지하던 뒤주는 플라스틱 쌀통에 자리를 내주었으며 그릇은 찬장이 아니라 싱크대에 수납한다. 그리하여 손때가 묻을수록 멋이 깊어지는 전통 목가구는 생활에서 밀려나 공부 대상이 되었다.
‘나무 공예’를 펼치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목가구와 살림살이가 가득하다. ‘사랑’, ‘안방’, ‘부엌’의 세 공간에서 만나는 나무 공예와 ‘일과 놀이’, ‘관혼상제와 종교’ 다섯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제는 공간마저 사라진 사랑에는 서안이 있었다. 소박하고 단정한 서안과 벼루를 넣는 연상과 연갑을 보면 꼿꼿하게 앉아 글을 읽는 선비가 연상된다. 절에서 쓰던 경상은 두루마리로 된 경전이 떨어지지 않도록 책상 양쪽이 들려있다. 그러나 선비도 가벼운 책은 서견대에 놓고 편안하게 읽었던지 휴대용 서견대도 있다. 문갑은 정원을 내다볼 수 있도록 나지막하게 만들어 창문 아래 두었고 양쪽 끝에는 사방탁자를 놓아 서책이나 도자기, 화분을 올려놓았다. 붓걸이와 종이를 끼워 보관하는 고비, 종이에 무늬를 찍는 시전지판에서 은근한 멋이 느껴진다.
안방으로 건너가면 검박한 사랑과는 달리 가구가 화려한데 화초장, 나전칠기처럼 드러나는 화려함 못지않게 먹감나무나 느티나무 나뭇결의 은은함이 눈에 띈다. 반짇고리에도 ‘수복강녕(壽福康寧)’ 같은 글귀를 새겨 가족의 무탈을 빌었고 실패 또한 모양이 다양하다. 수납가구는 반닫이, 궤, 함으로 나누었다.
부엌에는 물에 강한 소나무와 밤나무로 만든 기명과 찬장, 살강, 소반이 있었다. 그리고 뒤주. 쌀 500kg을 보관하는 큰 것도 있으니 사도세자가 움직일 수도 없는 작은 뒤주에 들어가지는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길 떠난 상민은 삼베 보자기를 펼쳐 주먹밥을 먹는데 양반은 어떻게 했을까? 음식이 쉬지 않도록 투각을 한 찬합이 있었다. 약수터에서 플라스틱 바가지가 아니라 표주박으로 목을 축일 날이 언제 다시 돌아올까.
오동나무로 만든 거문고, 약장, 목활자도 보인다. 가난한 양반은 맑은 날에도 짚신 대신 나막신을 신어 ‘딸깍발이’는 나막신 신고 걷는 소리에서 나왔단다. 관혼상제 편에는 가마, 상여의 나무꼭두, 제상, 교의, 향탁, 감실을 볼 수 있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살아 있을 때처럼 영혼이 집에서 산다고 여겨 신주를 모시는 감실을 작은 집 모양으로 만들었다.
전통 나무 공예를 아는 것은 물건의 이름과 쓰임새만이 아니라 그것에 담긴 우리의 정신세계와 전통생활을 접하는 것이다. 풍부한 사진과 적절한 설명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이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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