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라는 타이틀을 달고 우리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는 책들이 붐을 일으킨 때가 있었다. 스러져가는 옛 건축에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해줄 만하지만, 그 관심의 깊이도 만족할 만한 수준일까. 건축전문가들이 전통 명건축물의 미학과 조형의 토대가 된 사상적 배경을 분석, 보다 깊이 있게 건축을 보는 법을 알려주는 책 두 권이 출간됐다.
‘서양 근현대 건축사'(전 33권) ‘한국 현대건축사'(전 8권) ‘서양건축사'(전 5권) 등을 집필 중인 임석재 이화여대 교수가 ‘한국 전통건축' 시리즈를 시작했다. 그 첫 권으로 나온 ‘한국 전통건축과 동양사상'은 유·불·선 동양사상에 근거한 조형미의 관점에서 사찰, 명문고택, 서원 등 옛 건축물을 새로 해석했다.
저자는 우선 한국 전통건축의 두 축인 사찰과 한옥의 공간 구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핵심사상으로 불교의 공(空)과 도가의 비움 사상을 꼽았다. 한옥을 보자. 방들은 어느 하나 규격화돼있지 않고, 창과 문의 크기 위치 개폐조절도 모두 제 각각이고, 대청마루 같은 완충공간 덕분에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하며, 최소한의 얼개만 갖춰 언제라도 골격을 변화시킬 수 있다. ‘물적 형상의 고정된 상태에 집착하지 말라'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존재하는 빈 상태에서 사물의 본질을 찾으라'는 사상을 조형적으로 응용, 물질과 비움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전통건축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저자는 전통공간의 구성원리를 세분화하며 깊이를 더했다. 산문에서 시작해 대웅전이라는 종착점을 향해가는 사찰 건축의 단계성을 ‘길과 여정'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하고, 한옥 서원 향교 등 유교적 공간은 여러 단위의 어울림을 통해 집단적 위계성을 형상화함으로써 유교적 가치를 표현한다고 설명한다. 이 책의 각론에 해당하는 ‘한국의 지붕·선' ‘한국의 창문' ‘한국의 꽃살·기둥·누각' ‘한국의 전통공간'도 나올 예정이다.
건축가이자 실내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만해마을' ‘담양 정토사'등의 종교건축으로도 유명한 김개천 국민대 교수는 ‘명묵(明默)의 건축'에서 명건축 24선을 분석했다.
"질서는 있으되 구속이 없는, 공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자유로서 우주 같이 자율적으로 생동하는 허(虛)의 세계를 이뤘다"는 병산서원 만대루, "망자를 위한 공간이 살아있는 인간과 신이 화합하는 공간으로 우주의 중심으로 건축됐다"는 종묘 정전 등 옛 건축물들은 ‘밝은 침묵의 건축'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아침 햇살 같은 빛으로 이룩한 건축, 침묵을 의도하지 않은 침묵의 건축이라는 것이다. 30여년간 한국 사찰과 자연을 촬영한 관조 스님의 사진이 옛 건축에 흐르는 ‘밝은 침묵'을 더욱 강조한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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