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삶은 10년 전보다 더 비참해졌다." 3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산하 여성지위위원회 49차 회의에서 나온 장탄식이다.
100여개국 6,000여명의 여성운동가들은 이날 회의에서 1995년 제4차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에서 합의했던 ‘행동강령’의 실천에 실패한 각국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베이징 행동강령’은 성차별을 묵인한 법 조항을 폐지하고 법 안에 남아있는 편견을 제거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날 회의를 주최한 여성인권단체인 이퀄리티 나우(Equality Now)는 10년 전과 비교해 45개국 법안 내 여성 차별 조항이 얼마나 줄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프랑스 멕시코 스위스 터키 등 13개국만이 차별 조항을 개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연설자로 나선 이퀄리티 나우의 이사이자 배우인 메릴 스트립은 "베이징대회에서 성에 의한 불평등을 바로잡기로 서약했지만 정부에 의해 묵인된 여성차별은 줄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트립은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여성은 나이나 사회적 지위, 교육 정도에 상관 없이 공식적으로 2등 시민 취급을 받고 있다"고 분개했다.
이퀄리티 나우가 발표한 보고서는 이 같은 주장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쿠웨이트에서는 21세 이상 성인 남성만이 투표 할 수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는 여성이 운전하는 것을 죄악으로 여겨 금지한다.
또 많은 나라가 여성에 대한 잔혹 범죄를 저질러도 빠져나갈 구멍을 법령화해 남성 범죄자를 보호하고 있다. 과테말라나 우루과이 베네수엘라의 형법에는 ‘탈출 조항’이 있어 강간이나 추행, 유괴 등의 범죄를 저질러도 가해 남성이 피해자와 결혼하면 처벌받지 않는다. 아이티는 ‘가족의 명예’를 위해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남편이 죽여도 처벌 받지 않는다는 형법 조항이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1979년 공포된 이슬람 법령에 따라 여성은 강간을 당해도 전과 기록이 없는 4명의 성인 회교도 남자가 눈으로 직접 강간 장면을 보았음을 확인해 주지 않으면 기소조차 할 수 없게 돼 있다. 이밖에도 아프리카 레소토의 여성은 집이나 땅 같은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다.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은 헌법 14조에서 성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민법 733조에 의해 여성은 이혼 후 6개월이 지나기 전에 재혼할 수 없다.
이퀄리티 나우의 타이나 비엥-에메 행정국장은 "여성을 차별하는 법을 개정하는데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다"며 "이는 단지 정부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동그란기자 gran@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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