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야멸친 세태 선언이 있었거니와, 그래도 그런 게 아니라고, 움직이는 것은 애당초 사랑이 아니었다고 속 다독이며 사는 이가 혹시라도 있다면 세바스티앙 자프리조의 장편소설 ‘아주 긴 일요일의 약혼’이 위안이 되지 싶다.
1차대전 막바지 프랑스 동부전선. 기관총 벙커들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전장의 중간지대로 5명의 사형수가 끌려간다. 이들은 전쟁이 싫거나 두려워 자해(自害)한 ‘중죄인’들로, 휴전상태를 못마땅해 하던 군 수뇌부가 전쟁의 광기를 부추기고자 전투의 ‘미끼’로 내던져버린 것이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인 스무 살의 ‘블루에’에게는 고향에 두고 온 약혼녀 ‘마틸다’가 있다. "날 기다려 줘. 내 사랑 마티(마틸다), 우린 월요일에 결혼할거야."
모두가 어리석은 희망이라고 말하지만 마틸다는 블루에가 살아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소설은 블루에의 행방을 찾아 헤매는 마틸다의 지난한 행적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마틸다의 믿음이 어떤 형태로 응답되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녀의 탐문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전쟁의 참상과 정신의 극한상황 앞에 놓인 실존의 한계와 선택 등 여러 갈래의 의미들로 소설은 무게와 깊이를 유지한다.
이 소설은 지난 해 10월 영화감독 장 피에르 주네에 의해 영화화되면서, 1991년 발표 당시 못지않은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도 11일 개봉(‘인게이지먼트’)될 예정. 자프리조는 자신의 영화를 보지 못하고 2003년 4월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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