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도시법이 국회 의결을 거치면서 한나라당이 위태로운 내분에 싸였다. 지도부의 법 처리 방침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법사위를 점거, 회의를 저지하는가 하면 이를 의결한 본회의장은 욕설과 몸싸움으로 얼룩졌다. 의원총회의 추인 형식을 갖춘 당론을 한사코 거역하는 이들의 행태는 일단 지지를 받기 어렵다. 이들 31명의 의원들은 투쟁위원회를 만들어 장외 반대투쟁에 나선다고 한다. 여야의 합작 속에 야-야 싸움이 극렬한 이 장면은 한나라당의 위기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위기의 근원은 단순히 당론 찬성과 반대로 갈리는 외형적 갈등에 있지 않다. 지도부는 여야 합의라는 절차를 완료한 이상 절차에 따른 법 처리 수순을 역행할 수는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파동은 합의 이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지도부의 주장은 공허하다. 국가 대사를 다루는 공당으로서 정책적 검토, 합리적 토론, 반대론의 설득과 의견수렴 과정을 얼마나 떳떳하게 이행했는가, 또 여야 합의는 이런 과정이 얼마나 반영된 것이었는가. 당과 지도부가 되물어야 할 질문이다.
반대파 중에서도 당 정책연구소장을 지낸 정책위 의장이 당직 사퇴로 항변하는 것은 ‘압권’이다. 법안에 대한 전문적 논의보다는 충청권을 향한 정략적 동기가 합의를 주도했다는 비판을 뒷받침하지 않는가. 어떤 기관이 왜 남고 이전하는지, 행정수도의 성격과 기능은 어디까지 정의되는 것인지 법의 통과에도 불구하고 세세하고 합리적인 설명은 아직 부족하다. 16대 국회에서 수도이전법을 통과시켰던 정략과는 달리 사려했다는 점이 여전히 명쾌하지도 않다.
한나라당의 무기력과 정략적 처신은 처음 보는 게 아니다. 거대 야당으로서 목표와 원칙을 잃고, 지도력과 철학이 이렇게 빈약해서는 국가적 대형 이슈를 감당할 자격D이 없다. 국민의 믿음은커녕 여당을 극복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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