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와 환율하락 등의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국내 수출기업의 실적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면서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수출기업의 호조세는 전체 제조업체들의 경기전망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의 경우 올해 1월 69를 저점으로 3월 현재 87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도 종합주가지수가 1,000 포인트를 돌파,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경기에 대한 긍정적 전망에다 소비회복 조짐이 어우러져 이제는 우리 경제가 긴 불황의 골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경기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가 보편화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미국의 달러화 약세 정책과 중국의 변동환율제 시행 가능성 등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환율 변동폭이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말하자면 체계적인 환리스크 관리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출기업은 환리스크 관리에 소홀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2003년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환리스크 관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78%는 환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었으나, 중소기업의 경우는 54%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기업들이 환율변동에 대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현재의 우수한 수출실적은 대기업, 특히 5대 수출품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반면 많은 중소기업의 수출채산성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소기업의 대부분은 환율하락, 고유가, 원자재 가격상승 등의 악재들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양극화 현상이 지속될 경우 수출을 중단하는 중소기업이 속출함으로서 결국은 중·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환리스크 관리의 필요성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의 대응준비는 여전히 미비한 것 같다. 이는 환율이 변동할 때마다 외환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온 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지난 해 말까지 정부가 발행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누적금액은 35조원으로, 그 이자비용만도 1조6,000억원에 달한다. 최근 통화안정채권(통안채) 발행도 급증하면서 외환시장 개입에 따른 추가적인 이자비용은 1조5,00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실효가 크지 않다는 것은 최근의 환율급락을 통해 이미 경험한 바이다.
현재의 급격한 환율하락은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미국의 약(弱) 달러화 정책에 기인한 만큼 상당히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전 세계적인 달러화 약세에 따른 외환시장의 움직임을 정부의 시장개입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또한 국내 기업들의 자생적인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우리는 외환위기 전 800원대의 환율에서도 수출경쟁력을 유지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정부의 지나친 외환시장 개입은 기업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도 도리어 기업들의 자생력을 꺾을 가능성이 크다.
급변하고 있는 국제 경제환경 하에서 우리 경제가 지속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수출 규모 증가에 안주하려 들기보다는 중장기적인 경제성장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확실성이 점차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환리스크를 포함한 ‘리스크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 선물환 시장과 각종 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기법이 발달함에 따라 기업들이 택할 수 있는 헤징(Hedging·위험회피) 기법들은 다양하게 구성될 수 있다.
이제 리스크 관리는 선택의 여부가 아니라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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