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역의 멈춰 선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가던 70대 할머니가 갑자기 에스컬레이터가 다시 움직이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치료 도중 숨졌다. 유족 측은 에스컬레이터 관리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등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관리자 측인 영등포역과 롯데백화점은 책임을 서로 전가하고 있다.
◆ 사고발생 = 2일 오전 10시30분께 전철 1호선 서울 영등포역 지상 1층에서 나모(79·여)씨가 멈춰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3층 역 대합실로 걸어올라가다 에스컬레이터의 거의 끝 부분에서 기계가 재작동하는 바람에 뒤로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의 중상을 입었다. 나씨는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내상이 심해 이날 오후 3시께 숨졌다.
목격자 박모(44·회사원)씨는 "에스컬레이터를 할머니가 걸어 올라가다 위층으로부터 2∼3c정도 남겨 놓은 지점에서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움직여 할머니가 뒤로 넘어지면서 1~2바퀴 굴렀다"고 말했다.
이 에스컬레이터는 길이 22c에 일반계단 65개 높이로 1층 역 광장에서 3층 대합실로 바로 연결돼 있어 상당히 가파른 편이다. 3층에 오르면 왼쪽 편에 롯데백화점 매장 입구가 있고 오른 편에는 열차표 창구가 있는 대합실이 나온다.
◆ 책임공방 = 이 에스컬레이터는 1991년 롯데백화점이 민자역사 형식으로 영등포역에 입점하면서 지어진 뒤 역과 백화점이 공동 관리해 왔다. 그러나 사고가 나자 서로 관리 주체가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다.
영등포역 관계자는 "백화점 고객이 자주 이용하기 때문에 여태껏 백화점이 에스컬레이터 안전 관리를 맡아 왔다"며 "우리는 에스컬레이터 작동만 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화점 관계자는 "에스컬레이터 시설관리와 안전 점검 등을 최근까지 백화점이 맡아 왔으나 지난달 28일로 계약이 만료돼 더 이상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책임 소재가 어떻든 하루 수만명이 이용하는 에스컬레이터에 대한 안전관리 부재가 이번 사고를 불렀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 비난을 면키 어렵다는 지적이다. 폭설로 인해 계단이 미끄러워 많은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상황에서 기계가 멈췄는데도 경고문을 붙이거나 안내요원을 배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나씨의 아들인 이모(49)씨는 "에스컬레이터 고장 사실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책임 소재가 분명해지면 손해배상 뿐만 아니라 형사처벌 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멈춰선 에스컬레이터를 누가 다시 조작했는지 여부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김이삭기자 hiro@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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