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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봄처녀 노란 옷 입고 제주에 오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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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봄처녀 노란 옷 입고 제주에 오셨네

입력
2005.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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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널을 뛴다. 때 아닌 폭설과 꽃샘추위로 봄이 오는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 초목의 싹이 트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이 깬다는 경칩이 코앞이지만 봄 기운을 느끼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따스함을 기다리는 나그네를 조급하게 한다. 봄을 기다리기에 지쳐간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잡는다고 했던가. 조금 일찍 봄 향기를 맡기 위해 남도 제주로 향했다.

제주의 봄을 느끼는 방법은 해안가를 돌아 나있는 12번도로(일주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이다. 굳이 이 도로를 택하는 이유가 있다. 제주는 거대한 산이다. 한라산정상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해안도로의 고도는 5c 안팎이지만 웬만한 도로는 해발 500m를 넘는다. 고도가 높을수록 온도가 낮은 것은 당연한 이치. 제주의 봄이 바다에서 시작되는 이유이다.

공항에서 인수한 렌터카를 타고 본격적인 여행에 나선다. 제주시내를 지나 동쪽인 조천으로 방향을 잡았다. 시내를 벗어나자 길옆은 온통 초록이다. 한 뼘 이상 올라온 마늘순이 밭을 뒤덮었다. 몸통을 절반 이상 드러낸 무의 싹도 초록을 이루는 데 한몫 거든다. 밭의 경계를 이루는 현무암 돌담과의 색대비가 절묘하다. 이따금 햇살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모습에 봄기운을 물씬 풍긴다.

드라이브가 지루해진다 싶어도 걱정할 일이 아니다. 바다와 맞닿은 해안도로가 있다. 조천에서 함덕을 지나 김녕해수욕장으로 연결되는 해안도로를 가다 보면 환상적인 물빛의 바다와 조우한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는 이국적 향취를 맛보기에 모자람이 없다. 크리스털 블루색 바다에 포말로 부서지는 흰 파도는 덩치 큰 범고래가 물을 뿜어내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열대의 푸른 바다가 부럽지 않다. 여전히 매서운 칼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바다에 서면 마음은 이미 봄을 지나 여름을 느낀다.

김녕에서 세화로 가는 해안도로에서는 제주를 대표하는 많은 것들을 만난다. 돌담으로 연결된 마늘밭에 삼삼오오 마주 앉은 제주 아낙들이 특유의 사투리로 조잘거리면서 마늘캐기에 한창이다. 바다 앞에 자리잡은 수십 개의 풍력발전기는 거센 바람에 휘둘려 거친 숨소리를 내며 힘차게 돌아간다.

세화에서 성산으로 가는 길은 제주 바람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오죽했으면 주위의 나무가 모두 바다에서 육지방향으로 휘었다.

일출봉으로 유명한 성산에 도착하면 비로소 제주의 상징인 유채꽃밭을 만난다. 일출봉을 배경으로 하는 곳이면 흔히 만날 수 있다. 돈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일부러 씨를 뿌린 것이다. 물론 자연산은 아니다. 겨우내 추위에도 견딜 수 있는 개량종이다. 올 겨울 날씨가 어찌나 변덕스러웠던 지 노랗게 만개하기 전에 져버린 꽃이 많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제주의 토종 유채들이 이제 막 움을 틔우고 있다. 아직은 색이 옅지만 노란색 선명한 꽃이 땅에서 솟아나고 있다.

섭지코지는 이제 명실상부한 제주 최고의 관광지로 자리잡은 듯하다. 관광버스와 렌터카행렬이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 일등공신은 물론 드라마 ‘올인'이다. 태풍 매미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송혜교의 수도원이 최근 복구되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관광객이 언덕 중간쯤에 서있는 수도원을 보고 내려간다. 정작 섭지코지의 아름다움은 해안선과 언덕 정상에서 보는 일출봉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적다. 바닷속에서 자맥질하는 해녀와 바닷바람에 아랑곳 않고 세월낚기에 열중인 강태공들의 표정에서 봄이 가까이 왔음을 느낀다.

성산을 지나 남제주에 접어들면 봄기운이 물씬 묻어난다. 마늘, 대파, 무, 당근 등 봄채소를 수확하는 인부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길가에 난 동백꽃이 탐스럽다. 겨우내 입맛을 다시게 했던 감귤이 들어가고, 제주산 오렌지인 한라봉이 제철을 맞았다. 서귀포일대에는 가로수가 한라봉이다.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맺혔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던 유행가 가사가 문득 떠오른다. 길가 보리밭에는 초록이 제법 짙다. 모처럼 맑은 하늘사이로 속살을 드러낸 한라산 정상에 덮인 흰 눈과 대비된 탓이다.

제주의 서남단 대정들녘에서 제주의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이제서야 제대로 만개한 유채꽃을 만난다. 산방산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관광객들의 얼굴이 밝다. 지난 달 꽃을 맺기 시작한 야생수선화도 남아있다. 창문을 여니 봄이 한껏 차속으로 들어왔다.

제주=글·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제주의 봄 | 장터 기행 / 구수한 사투리에 넉넉한 인심 "맛 좋수다게 하영 삽서"

제주의 봄을 좀더 편하게 즐기고 싶다면 장터로 가자. 텃밭에서 갓 뽑아낸 싱싱한 채소와 막 잡아 올린 팔팔 뛰는 생선이 가득하다. 한가지 특징이 있다. 주차장에서 ‘허’자가 들어가는 차량을 찾기 힘들다. 관광객이 적다는 뜻이다. 현지 주민들만의 공간인 셈이다. 그들에겐 치열한 삶의 현장이지만 관광객입장에서는 더없이 살가운 공간이다. 따뜻한 정을 살 수 있다. 그 속에서 얻는 자그마한 행복은 덤이다. 제주의 또 다른 봄을 맞기 위해 제주시에 위치한 5일장을 찾았다.

제주시 민속5일장은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다. 12번 일주도로를 따라 서쪽 한림방향으로 10분 가량 떨어진 신제주 도두동에 있다. 장터에 드는 순간 낯선 제주사투리로 채소를 파는 할머니 50여 명이 좌판을 벌려놓고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할머니장터로 불리는 곳이다. 장터에 내다 팔기 위해 지난 밤 동네 텃밭에서 수확한 당근과 마늘이 주종이다. 한적한 시골의 조그만 장터를 연상케 한다.

실망감이 앞서려는 순간 본격적인 장터가 시작된다. 우선 주차장 규모에서 놀란다. 1,000대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다. 장터는 1만 평을 헤아리고 상인도 1,000명을 넘는다. 수도권의 모란장을 제외하면 전국 최고 수준이다. 예기치 못한 데서 발견한 뜻밖의 수확이다.

장터에 들면 동백꽃, 호접란, 동양란 등이 눈에 띈다. 울긋불긋한 색채에서 봄을 실감한다. 무, 배추는 제철을 만났다. 도시에서는 무 1개에 1,000원을 호가하지만, 이 곳에서는 말만 잘하면 같은 값에 4~5개 구입도 어렵지 않다. 도시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한라봉이지만 이 곳에서는 좌판신세를 면키 어렵다. 보통 1kg에 5,000원이면 살 수 있다. 크기가 작은 것은 3,000원에도 팔린다. 도시의 할인마트에서 판매되는 가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키위, 낑깡 등도 1kg에 3,000~4,000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땅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아주머니들의 입담은 분명 구수한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외지인들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관광객이 가까이 가니 금세 표준어로 흥정에 임한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냐는 질문에 ‘물건을 사야 찍을 수 있다’고 농담으로 화답한다.

과일, 채소코너를 지나니 생선가게가 즐비하다. 제주 특산물의 하나인 옥돔도 1만원이면 4~5마리를 살 수 있다. 널린 게 모두 옥돔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옥두어, 꼴돔, 황돔 등 생김새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조금씩 다르단다. 길이가 10cm를 넘는 멸치도 있다.

웬만한 시골에서도 사라진 대장간도 눈에 띈다. 처음 보는 낯선 연장을 다듬는 대장장이의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제주오겹살을 일반 할인마트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것도 특징.

이 곳 상인들의 절반은 전형적인 장돌뱅이이다. 제주장(2,7일)이 끝나면 다음 장으로 이동할 채비를 서두른다. 서귀포, 한림, 세화, 모슬포 등을 돌다가 5일 후면 다시 만난다.

제주민속5일시장 박선종(51) 번영회장은 "제주 전역에 9개의 5일장이 남아있고, 저마다의 특색이 있어 관광코스로도 손색이 없다"며 "제주의 속살을 들여다 보고 싶다면 장터기행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제주의 봄 | 맛기행 / 토종 돼지구이·갈치회 등 입에 녹아

제주여행이 즐거운 이유가 또 있다. 볼거리만큼이나 풍부한 먹거리이다. 산지에서 나는 싱싱한 어패류나 육류를 재료로E 이용, 신선하다는 것이 특징. 수도권에 제주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집들이 늘어나지만 2%부족한 느낌이 든다. 물을 건너기 때문일까. 역시 제주 음식은 제주에서 맛보아야 한다. 제주의 봄을 입으로도 느껴보자.

제주의 대표메뉴는 역시 갈치이다. 두께가 두터워 살이 많다. 구이로 혹은 조림으로 내놓는데, 갈비를 뜯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살이 푸짐하다. 살을 길게 썰어 내놓는 갈치회는 최고의 별미. 갈치는 성질이 급해 뭍으로 올라오면 오래 살지 못해 횟감이 싱싱하다. 비린내가 날 것 같은 선입관이 들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초고추장에 찍어 한 입 넣으면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제주시의 물항식당(064-753-2731)이 유명하다.

신제주 숙박업소 밀집지역에 들어선 유리네(748-0890)는 갈치국과 성게미역국을 잘한다. 자리돔물회, 옥돔구이 등 제주의 별미를 모두 맛볼 수 있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육지손님이 많아 일찍 가지 않으면 줄서기를 각오해야 한다.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 내로라는 유명인사의 사인이 음식점을 가득 메우고 있다.

돔베고기(사진)도 별미 중 하나. 부엌에서 사용하는 도마위에 마늘을 넣고 삶은 돼지고기 수육을 얹어 내놓는다. 돔베는 도마의 사투리. 야채, 자리젓, 멸치젓에 찍어먹는 데 노린내가 나지 않는 것이 특징. 제주공항근처의 덤장(713-0550)이 이름나 있다.

제주토종돼지구이를 맛보려면 우가촌(739-0456)을 추천할 만하다. 중문단지 인근에 있다. 흑돼지를 껍질째 두툼하게 썰어 구워먹는 맛이 일품이다.

값비싼 전복죽을 푸짐하게 먹으려면 성산일출봉 입구의 오조해녀의집(784-0893)과 섭지코지 앞 섭지해녀의집(782-0672)을 찾는다. 해녀들이 직접 잡은 전복으로 죽을 쑨다. 음식을 마련하는 주방일도 해녀들이 직접 하고 있다.

보건식당(753-9521)은 전복의 사촌쯤 되는 오분재기로 끓여내는 된장뚝배기를 잘한다.

한창만기자

■ 길에서 띄우는 편지

날씨를 가늠하기 너무 어로렵습니다. 12월 내내 기다려도 소식이 없던 눈이 2월부터 내리기 시작해 3월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봄은 어디까지 왔을까요. 한껏 궁금증을 가지고 제주로 출장을 떠나게 됐습니다. 다행이 창가에 자리를 배정받아 항공기에서 한반도의 산하를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본 세상은 여전히 동토(凍土)에 다름없습니다. 온 산을 뒤덮은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온통 잿빛입니다. 금수강산,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표현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풍경입니다.

한반도상공을 지나 다도해로 접어들어서도 잿빛은 변함이 없습니다. 마치 흑백예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영화 한편이 떠오르더군요. 몇 년 전에 상영된 ‘프레전트빌(Pleasantville)’이라는 영화입니다. 프레전트빌은 흑백TV시대 미국에서 인기있던 드라마제목이자 마을이름입니다. 영화는 현재의 두 주인공이 우연히 과거속으로 들어가 마을주민과 어울리면서 사랑을 눈뜨게 하고, 이 과정에서 주위는 점점 총천연색으로 변해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문득 우리의 산하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지금은 잿빛투성이지만 서서히 땅이 깨어나고 있습니다. 제주의 유채와 보리밭에서 시작된 컬러색채가 이제 조금씩 북상하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형형색색의 산하로 뒤바뀔 것입니다.

이제 곧 매화, 산수유꽃, 벚꽃이 잇달아 피고 집니다. 진달래와 철쭉이 붉게 물들일 날도 금방입니다. 국토를 수놓던 화려한 꽃이 사라질 때 쯤이면 온 산은 신록으로 변합니다.

봄이 조금 늦어진다고 합니다. 누구를 탓하겠습니다. 그래 봤자 며칠입니다. 대신 그 보답은 훨씬 달콤할겁니다. 꽃샘추위도, 때늦은 눈소식도 결국은 봄의 화려함을 돋보이게 하는 소품에 불과합니다. 이제 봄을 즐길 일만 남았습니다.

한창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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