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라고 하면 흔히 길에서 강도 따위가 저지르는 성폭력을 연상한다. 그러나 성범죄는 성을 사거나, 이를 알선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청소년 대상의 성범죄행위, 특히 13세 미만 아동에게 행해지는 성폭력ㆍ성매매의 많은 경우는 주변의 아는 사람들로부터 가해진다. 최근에도 집에서 방문교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중1 여학생을 상담했거니와, 청소년대상 성범죄자의 세부신상공개와 청소년접촉가능 직업군에의 취업제한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세부신상공개란 강간ㆍ강제추행은 물론, 성매수 행위를 포함한 청소년대상 성범죄 2회 이상의 고위험 범죄자를 선별, 그 사진과 주소 등을 경찰의 CD롬 자료형태로 공개해 지역주민이면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 각급학교, 유치원, 보육시설, 학원, 아동복지시설, 청소년수련시설 등에 청소년 성보호법 위반자는 취업할 수 없게 하자는 것이다.
이는 단순 법리로만 따지면 인권침해 소지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청소년의 성적(性的)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사회공익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 동안 성범죄를 다루는 데 있어 피해자 입장은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세부신상공개와 일부 직업제한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첫째, 장차 있을 수 있는 잠정적 청소년피해자라는 더 큰 영역의 인권보호를 생각해야 한다. 아동 성폭력의 경우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사례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주변의 성범죄자 세부정보를 미리 알려주는 것은 아동ㆍ청소년의 인권보호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 제도는 범죄자에 대한 응징보다는 궁극적으로 청소년의 성을 보호하기 위한 예방을 주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재범 위험성이 높은 범죄자를 선별 공개하자는 취지를 놓고 가해자에 대한 인권침해 부분만 강조할 수는 없다.
둘째, 피해자인 청소년의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 지금도 청소년들은 강간, 강제추행, 성희롱, 음란전화, 스토킹, 사이버상의 음란물 유포, 음란성 채팅, 몰래카메라 촬영 등 매우 다양한 유형의 성범죄에 노출돼 있고 피해 청소년들은 육체적, 심리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신상공개 관련 법개정 논의는 청소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보다는 법조인과 학자들의 법리적 해석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청소년들은 신상공개 관련 논의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의사가 전혀 고려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세부정보공개는 '성범죄는 별일 아니다'라는 여전한 사회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피해자유발론 등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에 대한 비난의식이 존재한다. 피해사실을 드러내 말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이에 따라 성범죄의 고소율은 10%미만으로 추정되고, 용기를 내어 고소를 한 이들은 형사사법절차에서 심각한 2차 피해까지 겪는다. 피해 당사자만 가만 있으면 성범죄는 별일 아니라는 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또한 청소년에 대한 성범죄는 인권 유린 뿐 아니라, 해당 청소년에 대한 정신적 살인행위와 다름없다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 확보와 청소년의 인권 보호를 위해 이 정도의 제도개선은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임을 재차 강조한다.
양해경 청소년보호위원회 성문화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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