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는 말을 처음 쓴 것은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권총으로 자살하자 유럽에서 모방자살이 유행처럼 번져 나간 것을 그렇게 일컬었다. 필립스는 베르테르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1947~68년 미국에서 발생한 35건의 주요 자살사건 전후 4개월간의 자살률 변화를 조사했다. 그 결과 자살사건이 미디어에 대대적으로 취급된 후 2개월 동안의 자살률이 평균치보다 급증했다. 미국 웨인주립대 스티븐 스택 교수는 언론의 자살보도가 소설이나 영화 속의 자살보다 후속자살에 미치는 영향이 4.03배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 오스트리아는 80년대 지하철 투신자살이 급증하자 연구에 나서 언론이 지하철 자살을 드라마틱하고 충격적인 기삿거리로 보도한 것이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자살예방협회는 자살사건 보도원칙을 만들어 각 언론사에 협조를 배포했고, 그 결과 지하철 자살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유명한 록그룹 ‘너바나’의 리드 싱어 커트 코베인이 94년 권총자살하자 호주에서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오히려 더 낮아진 것. 그의 부인이 남편의 약물남용을 제기하는 등 죽음을 낭만적으로 덧칠하지 않았고 언론도 이를 그대로 보도한 때문이었다.
■ 1일 서울에서 자살한 20대 여성은 죽기 전 동료에게 "이은주가 죽는 것을 보니 나도 빚에서 해방될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설문조사를 했더니 100명 중 6명이 이은주 자살소식을 듣고 동조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성향이 ‘흥미 위주’ ‘선정적 경향’ 이라는 대답도 67%나 됐다.
■ 지난해 기자협회 등에서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만들어 언론사에 협조를 요청했다. 자살을 미화하거나 낭만적 행위로 포장하지 말 것, 자살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거나 원인을 뚜렷이 명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카드빚으로 비관 자살’이라고 보도하면 카드빚이 있는 상당수가 자살을 떠올린다.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 권고기준이 무색하다. 자살은 ‘전염병’이며, 언론은 전염병을 옮기는 매개균이 될 수 있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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