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공영방송 영국의 BBC 개혁이 용두사미(龍頭蛇尾)에 그칠 전망이어서 영국 내에서 거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 정부는 2일 BBC 개혁안을 담은 '그린페이퍼'를 발표, BBC 수신료 징수와 정치적 독립의 근거인 왕실칙허(Royal Charter)를 10년(2007년1월~2016년12월) 연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경영위원회(Board of Governers) 체제가 폐지되고, BBC신탁(Trust)과 집행이사회(Executive Board)를 신설, 감독기관을 경영에서 분리하기로 했다. 경영위원회는 '치어리더'와 '심판'역할을 동시에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정부 개혁안은 야당이나 정부의 방송 감독기구인 '오프컴'(Ofcom·Office of Communication)의 요구는 물론, 심지어 BBC의 자체 개혁안보다도 강도가 낮은 것이다. 보수당은 "단지 분칠을 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BBC는 수십 개의 각종 채널을 운영하고 30개의 잡지를 발행하는 공룡조직. 연평균 5조5,000억원 이상의 국민 수신료를 독점하면서도 5,000억원을 넘는 적자를 기록하는 등 방만한 운영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2만8,000명 직원의 인사 관리를 위해 1,000명이 넘는 인력관리본부를 구성할 정도.
때문에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함께 다채널디지털 시대라는 변화된 방송환경을 고려해 수신료 독점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오프컴’은 지난해 "공공재산인 전파를 사용하는 대가로 국민들이 내는 수신료를 BBC가 혼자 가질 근거가 없다"며 상업방송의 공익성 높은 프로그램에 수신료로 보상, 전체 방송의 공익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영위원회에 대해선 BBC의 특성을 고려해 ‘오프비브’(OfBeeb·BBC의 애칭)라는 독립된 감시기구를 만들되 다른 방송처럼 ‘오프컴’의 통제를 받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 개혁안은 수신료 독점 폐지 요구 등에 대해 "10년 후 검토한다"는 편법으로 비켜나간 셈이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는 수신료와 구조개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잃었다고 지적했다. BBC신탁 신설도 그저 경영위원회를 대체한 새 규제 기구가 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여기에 10% 인력감축 제안은 2만8,000명 중 6,000명을 정리하겠다는 BBC 자체 제안보다도 후퇴했다는 것.
이 같은 ‘솜방망이’ 개혁은 BBC 개혁이 정치적 동기에 의해 진행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BBC 개혁은 2003년 토니 블레어 정부와 이라크전 보도를 두고 갈등을 빚으면서 갑자기 정치적 의제가 됐다. 블레어 정부의 장기 구상에 의한 개혁이 아니었던 것. 좌파성향의 가디언은 관련 특집물 제목을 ‘정치와 언론’으로 달기까지 했다.
BBC는 2003년 정부가 이라크전 참전 명분을 쌓으려고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45분 만에 실전 배치될 수 있다"고 사실을 왜곡하고 부풀렸다(sex up)고 보도했다 된서리를 맞았다. 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해 1월 예상을 깨고 블레어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장과 경영위원회 이사장이 동반 사퇴했고, 이후 정부의 거센 개혁 압력에 시달려 왔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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