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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밀리언 달러 베이비-링위의 땀·감동 빚어낸 묵직한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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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밀리언 달러 베이비-링위의 땀·감동 빚어낸 묵직한 연출

입력
2005.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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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권투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록키’(1976)처럼 주인공이 불굴의 의지로 정상에 다다르는 과정만을 담은 영화는 아니다.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지만, 정신적으로는 황폐했던 한 남자의 몰락 과정을 정교하게 담아낸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분노의 주먹’(1980)과도 확실히 결을 달리 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아버지와 아들의 안타까운 사랑을 신파조로 그린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챔프’(1979)에 가깝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이들 영화와는 전혀 다른 세련된 감동의 장치를 지니고 있다. 권투를 씨줄로 하면서 부녀간의 사랑에 가까운 두 남녀의 교감을 날줄로 해 근래 보기 힘든 완성도를 만들어낸다.

전반부는 서른 한 살 나이에 ‘자신만 볼 수 있는 꿈 때문에 모든 것을 건’ 매기(힐러리 스왱크)가 노년의 트레이너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도움으로 링 위에서 성공시대를 열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주리주 깡촌 출신으로 자신이 일하는 음식점에서 손님이 남긴 음식으로 저녁을 대신할 정도로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매기가 어두운 체육관에 홀로 남아 샌드백을 두드리는 장면은 꿈을 잊고 지내는 관객들의 가슴에 잔물결을 일으킨다.

모국어인 게일어를 공부하고 예이츠의 ‘이니스프리 호수 섬’을 암송하며 외로움을 달래던 프랭키가 오래 전 소식이 끊긴 딸 대신 매기에게 ‘부성애’를 쏟으며 ‘인간 승리’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모습도 훈훈한 온기를 전한다.

그러나 벅찬 희열을 안겨주던 매기가 ‘반칙왕’ 챔피언의 일격에 정상 문턱에서 불구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후반부부터 관객들 가슴에는 거센 파도가 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끝까지 희생을 강요하는 가족을 대신해 프랭키가 매기에게 ‘영원한 휴식’을 안겨주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왈칟? 눈물을 쏟게 만든다.

‘버드’(1988)와 ‘용서 받지 못한 자’(1992), ‘미스틱 리버’(2003) 등으로 감독으로서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이스트우드의 노련한 연출은 긴박한 권투 경기 장면을 매끄럽게 잡아내고, 화면 속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관중들의 함성이 귓전에 울리도록 한다. 그는 각박한 현실을 이겨내려 했던 매기의 꿈이 끝내 무너져 내린 뒤의 슬픔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도 목젖을 뜨겁게 만든다. 스크랩(모건 프리먼)과 ‘오합지졸’ 권투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스산하면서도 넉넉한 웃음은 자칫 신파로 빠질 수 있는 극 전개에 균형감을 부여한다.

28일 열린 제77회 아카데미영화제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노른자위’ 상들을 휩쓸었다. 10일 개봉. 12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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