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가 심각했던 지난해에도 국회의원 3명 중 2명은 재산이 늘어났다는 사실에 국민의 시선이 곱지않다. "돈이 없어 정치를 못하겠다"며 정치자금법을 현실화하려던 정치권은 머쓱한 표정이다. 그렇지만 대다수 의원들은 "재산이 늘었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선관위로부터 돌려 받은 4·15 총선보전비용, 연말에 몰린 후원금 등이 신고재산에 포함돼 장부상 흑자일 뿐 실제로는 적자라는 주장이다. 과연 진실은 뭘까.
국회공직자윤리위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의원들은 평균 9,373만원씩 재산을 불렸다. 과거와 달리 선거비용이 별로 들지않았다고 하지만 정치자금 수요가 가장 큰 총선을 치른 해였기에 의외다. 새로 고급차를 산 의원도 90명이 넘었다. 통계만 보면 "생계형 비리가 벌어질 판"이라던 의원들의 푸념은 상당히 과장됐다.
씀씀이 차이가 크지만 830만원 안팎의 세비를 몽땅 특별당비로 내고 당에서 매달 450만원(비례대표는 300만원)을 타 쓰는 민노당 의원들조차 10명중 7명은 재산이 늘었다고 신고했다. 최소한 "빚에 찌들려 못살겠다"는 주장만큼은 사실이 아닌 셈이다. 물론 연평균 1억9,600만원을 후원금으로 모았던 16대와 달리 후원금이 1억원 미만으로 주는 등 수입이 준만큼 씀씀이를 줄인 영향도 크다. 한 재선의원은 "월 평균 2,000만원 정도 들던 돈을 17대 들어 절반 수준으로 확 줄였다"고 했다.
의원들은 그러나 재산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신고시점과 제도변경에 따른 착시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지난해 6월을 전후해 선관위로부터 평균 9,100만원씩 선거보전비용으로 돌려 받은 게 재산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4,100만원 증가를 신고한 한나라당 이명규 의원은 "지난해 재산신고 당시에는 빠졌던 선관위의 선거보전금 8,000만원 때문"이라며 "이를 빼면 대부분의 재산이 줄었다"고 항변했다. 9,400만원이 늘었다고 신고한 우리당 이강래 의원도 "선거보전비용을 돌려 받은 것"이라고 했다.
또한 후원회를 통해 주로 봄, 가을에 후원금을 거뒀던 과거와 달리 후원금이 연말에 집중된 탓도 있다.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은 "신고일인 지난해 12월31일 당시 후원금 통장 잔고인 6,900만원이 그대로 증가분으로 잡혔다"고 말했다. 실제 15, 16대 동안 재산변동이 거의 없었던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도 이번에는 5,600만원이 늘었다고 신고했다. 김 의원측은 "10만원짜리 세액공제 후원금이 연말에 집중되면서 일시적으로 재산이 늘어난 것처럼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386세대 중 1억6,000만원이나 재산이 늘어난 우리당 이화영 의원측은 "증액분 중 6,000만원은 이 의원의 퇴직금이며 나머지도 연말정산 때 집중적으로 들어온 후원금 9,800만원"이라며 "그나마 의정보고서(3,500만원), 밀린 외상값으로 모두 쓰고 현 잔고는 수백만원 밖에 없다"고 했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이동훈기자 dhlee@hk.co.kr
■ 政資法 개정 필요한가
재산이 늘어난 국회의원이 뜻밖에 많은 것으로 나타나자 정치인들의 돈줄을 풀어주는 방향의 정치자금법 개정이 과연 필요한가에 대한 논란도 새롭게 일고 있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갈리고 있지만 "아직은 안 된다"는 쪽이 많은 편이다.
우선 "현실과 동떨어진 과도한 규제는 풀어야 한다"는 주장. ▦집회 형식의 후원회 허용 ▦연간 후원금 모금한도(1억5,000만원) 확대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 허용 등이 골자다. 정치개혁협의회 김광웅 위원장은 2일 "정치자금은 눌러 놓으면 편법이 활개치는 등 음성화한다"며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와 후원금 모금행사를 허용하는 등 너무 구속적인 면은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정치는 개인재산으로 하는 게 아니라 지지자들로부터 투명한 정치자금을 받아서 하는 것이란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의원 개인의 재산증가와 정치자금 논의는 별개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이강래 위원장도 지난달 24일 관련 공청회에서 "누군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줬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여론을 살펴야 하지만, 개정은 필요하다는 취지이다.
다음은 시기상조라는 지적. 명지대 정진민 교수는 "현재 틀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1다"며 "정치인과 기업간 대가성 거래 관행이 남아 있는 등 법인 정치자금 기부를 허용할 정도로 정경유착이 근절됐다고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집회 성격의 후원회 허용에 대해서도 "모금 내역의 투명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참여연대 손혁재 운영위원장도 "제대로 시행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법인 기부금 허용을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후원금 한도 상향과 관련, 우리당 정장선 의원은 "실제 1억5,000만원 상한선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올릴 필요가 없다"며 "중요한 것은 소액 다수 모금의 활성화 방안"이라고 지적했였?. 인하대 정영태 교수는 "투명성 확보가 전제되지 않았는데 정치자금법 틀을 바꿔 풀어버리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질 것"이라며 "도덕성과 투명성 확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 재산 줄어든 의원들 속사정은…
지난달 28일 국회의원 재산변동 공개에서 재산이 줄어든 의원은 92명. 이들 대부분은 후원금을 제대로 모으지 못했다.
재산 등록상 2,400만원이 감소했고, 당내 모임인 '새 모색'의 공동통장을 빼면 실제로 4,000여만원이 줄어든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은 연말에 후원금을 모금하지 않아 적자 폭이 커졌다. "도와주시는 분들이 그 분이 그 분인데 선거 때 후원금 달라고 하고, 연말에 또 손 벌리기가 송구스러웠다"고 말했다.
우리당 이상민 의원은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에 아예 후원회를 만들지 않았던 소신파. 하지만 1억8,200만원의 재산이 줄어든 이 의원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최근 후원회를 만들었다.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도 세비만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한 뒤 후원회를 운영하지 않아 5,700만원이 줄었다.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 우리당 최재성 의원은 후원금을 7,000만~8,000만원 정도 모으긴 했으나, 의정 활동비를 감당하기에는 벅차 각각 3,900만원, 4,500만원의 재산이 줄었다. 최 의원은 "후원금 한도를 채우면 적자를 면할 수 있겠지만, 초선 의원으로서 한도를 채우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적자의 가장 큰 원인으로 대다수 의원은 지역구 사무실 운영비를 꼽았다. 예전의 지구당 체제에 비해 규모가 줄어들긴 했지만, 월 임대료 200여만원에 직원 한 명만 고용해도 기본적으로 월 400만~500만원이 든다는 것. 근근이 모은 후원금의 반 이상을 여기에 쓴다는 얘기들이다.
우리당 우원식 의원은 지난해 10월 지역구 사무실을 폐쇄한 덕에 이번 공개에서 500만원 감소 선에서 더 이상의 적자를 막았다. 우 의원은 "지역구 의원으로서 사무실을 무작정 닫아 둘 순 없어 며칠 전 문을 다시 열긴 했는데 막막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원들마다 허리띠를 최대한 졸라맬 수 밖에 없다. 7만~10만부씩 찍어냈던 의정보고서를 3만~4만부 정도로 줄인다든지, 연 4회 정도 내던 의정보고서도 1번으로 갈음하는 식이다. 때문에 생활비는 부인 수입에 의존하는 '온달형' 의원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후원금을 1,000만원8도 모금하지 못한 우리당 한병도 의원은 약사인 부인의 수입으로 생활비를 감당하고, 세비로 근근이 의정활동을 한다고 하소연했다.
송용창기자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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