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아이’를 본 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씩 살아나 얼굴을 옥죄어 오고, 방 바닥이 어느새 새빨갛게 변하면서 피투성이 손이 불쑥 솟아 오르고, 원혼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갑자기 코 앞에까지 밀려오는 끔찍한 상상에 시달리는 등 공포영화의 후유증에 시달린 건, 미안하지만 아니다.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일단 첫번째 의문점. 차장 찬식(송일국)이 사상자가 무려 100명이 넘었던 16년 전의 그 끔찍한 열차 사고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 남았냐는 것이다. 사고 당시에도 차장으로 일했던 찬식이 어떻게 16년의 세월이 흘러서도 20대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역시 미스터리다. 처음에는 찬식도 귀신이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다. 또 다른 의문점은 사고 당시 기관사였던 미선(장신영) 아버지의 혼령은 왜 사복을 입고 있는가다. 초반에 등장한 그림 그리던 꼬마의 정체는 무엇이며, 화장실에 널브러져 있던 그 끔찍한 시체는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초반에 등장하지 않던 사고 희생자의 미망인(정영숙)은 왜 갑자기 등장한 것인가 등 도통 풀리지 않는 의문 투성이었다.
꽤 오랫동안 괴롭히던 ‘레드아이’의 악몽이 사그러들 무렵 다시 한 번 머리 속을 죄 뒤흔들어 놓은 영화가 ‘숨바꼭질’이다. 각기 다른 두 가지 버전의 결말을 모두 본 직후 "두 가지 결말이 별 차이가 없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궁금증은 몽글 몽글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스포일러 있음) 두 가지 결말을 비교해 봤을 때, 과연 에밀리가 피해자인가 하는 것이다. 에밀리가 피해자라면, 왜 찰리를 도왔던 것일까, 욕실에 그 끔찍한 글씨는 왜 썼단 말인가, 얼굴이 뭉개진 채 동굴 속에서 둥둥 떠 다니는 인형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도대체, 누가 범인이란 말인가. 술래 잡기에 실패하고 머리는 지끈거린다.
영화를 볼 때 상상력은 필수 준비물이다. 관객의 상상력에 맡깁니다, 하는 식의 열린 결말, 좋다. 그런데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상상력을 요구하는 영화가 있다는 말이다. 허술한 구성을 관객의 상상력 몫으로 돌리는 괘씸한 영화다. 기본적으로 얼개가 엉성하고 이야기는 모순되고 히트작의 카피임이 명백한 영화들은 너무 많은 상상력을 요구한다. ‘당신만 이해 못한 거다’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해답을 찾기 위해 인터넷 서핑에 투자한 그 시간들과, 불면증에 대한 책임은 도대체 누가 지느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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