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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北의 "합리적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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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北의 "합리적 우려"

입력
2005.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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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6자회담에 무기한 불참을 선언한 이후 대응책 마련을 위해 한미일 3국 수석대표회의가 열렸으나 결과는 북한 핵문제 해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북한의 관심사를 포함해 모든 문제를 6자회담에서 다룰 수 있다"고 밝힌 것은 다소 진전된 모습이긴 하나, 북한에 대해 "지체 없이 무조건"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을 요구한 것은 기존 입장의 되풀이에 불과하다. 이런 요구를 북한이 쉽게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을 회담에 끌어들이고, 또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북한이 왜 6자회담 불참을 선언했고, 북한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는 말이다. 북한은 ‘2.10 외무성 성명’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을 통해 "충분한 조건과 분위기가 성숙되면"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조건은 방북한 중국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을 통해 후진타오 주석이 김정일에게 보낸 친서에서 거론한 "조선측의 합의적 우려"와 무관치 않다.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 또한 우리 송민순 차관보를 면담한 자리에서 "북한의 정당한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지난 해 11월 "북한의 핵이 자위수단이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LA발언도 이런 중국의 입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도 "북한의 주장은 옳은데 방법이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합리적 우려’란 무엇인가.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에 의한 북한체제의 안전보장을 줄곧 요구해 왔다. 북한의 이러한 요구는 정당한 것이다. 어떤 국가가 핵무장을 포기하고 불평등한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체제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핵무기 국가들이 해당 비핵무기 국가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안보보장을 해주어야 한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소극적 안보보장(NSA)’이라고 한다. 1970년 NPT의 탄생과 95년의 재연장 합의는 핵무기 국가와 비핵무기 국가들 간에 이런 약속과 전제에서 가능했다. 더구나 미국은 94년 ‘북미 제네바합의문’ 제3조 1항에서 북한에 대해 이 NSA를 문서로서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미국이 이러한 NSA 약속을 정면으로 깼다. 2002년 ‘핵태세 보고서’와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선제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부시 2기의 대북정책 목표는 ‘북한체제 변형문제’로 확대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제는 북한 핵문제만 해결되면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하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핵문제 해결을 넘어서 "폭정이 종식"되고 "체제변환이 이루어진 북한"과 비로소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정상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우려는 또한 이런 것이다. 미국이 제기한 핵 의혹에 대한 검증에 동의하여 사찰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것이 문제의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은 끊임없이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고 새로운 전제 조건들을 제시할는지 모른다.

‘이라크 교훈’은 북한을 더욱 움츠리게 만들었다. 이라크의 경우 10년 가까이 전국토를 이 잡듯이 뒤지는 철저한 무기사찰을 받아 사실상 무장해제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대량파괴무기 의혹을 제기하며 이라크를 침략했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건은 북한의 ‘합리적 우려’를 해소해 주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정책 변화 없이는 불가능한 문제이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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