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의 일주문에는 예외 없이 '입차문내 막존지해(入此門內 莫存知解)'라는 여덟 글자가 씌어 있다. '이 문안에 들어와선 모든 알음알이를 버리라'는 뜻으로 마음을 비우고 무념(無念)으로 돌아가라는, 깨달음의 길로 이끄는 게송이다. 세간에 뿌리박고 사는 사람들에게도 이 말이 전해주는 의미는 심상치 않을 것 같다. 세속의 모든 것을 한번쯤 잊고 하심(下心)을 가져보라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진다. 하심은 겸허한 마음이되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바탕에는 자비심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고 불교는 가르치고 있다.
원당암(願堂庵)은 법보종찰(法寶宗刹) 해인사(경남 합천)의 토대다. 비록 해인사 창건에 앞서 신라 왕족의 원찰(願刹)로 세워졌지만 그 이름에서는 원력의 큰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가 갖는 소망은 사적인 바람에 머무른다. 하지만 원력은 이웃까지 껴안는 자비의 마음을 품고 있다. 원당암의 어른이 원각(源覺·60) 스님이다. 2년 전 열반에 든 혜암(慧菴) 전 종정의 두 번째 상좌로 지금 해인총림의 유나(維那) 소임을 보고 있다. 이를테면 선원과 사찰 전체의 질서를 잡는 책임을 맡고 있는 것이다.
유나라는 소임에 의해 갖게 된 선입감과 달리 스님의 모습에선 산승의 내음이 물씬 배어나온다. 아마도 수행의 빛이 아닐까 싶다.
"우리에겐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 시간 이후는 내세이고, 이전은 전생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순간순간 열심히 살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나'라는 존재는 생명이 유지되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살아 있어야 도를 통하든지 무엇이 되든지 할 것 아닙니까." 최근 스스로 목숨을 버린 한 배우가 떠올라 소회를 털어놓았더니 스님은 그렇게 대화를 풀어간다. 그러면서 생명경시 풍조를 안타까워한다.
"사람의 목숨은 바로 이 한 순간의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당연히 지금 이 자리에서 하는 일에 항상 주인이 돼야 합니다. 일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생명도 저마다 자기 목숨을 가장 귀하게 여깁니다.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결코 남을 해치지 못합니다.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곧 자비의 실천입니다." 당연히 부처는 살생과 함께 자살을 가장 큰 죄로 여겼다. 그리고 한 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겁을 지나도 회복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자살 역시 집착의 결과입니다. 마음에 끌려 다니지 말고 마음을 끌고 다녀야 하는데 그러려면 생각을 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어진 상황에 스스로를 가두다 보니 길을 잃게 되지요. 당면한 고통이나 문제에서 한 생각을 돌리면 분명 다른 길이 나타납니다. 명예나 모욕은 모두 일시적인 것입니다. 허상이지요. 그런 게 목숨보다 소중합니까. 부처님은 한 이교도로부터 더할 나위 없는 수모를 당하자 ‘그대가 나에게 귀중한 물건을 갖고 왔지만 내가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도로 갖고 가지요’라고 답하자 ‘지금까지 그대가 나에게 한 욕을 받지 않았으니 그 욕은 그대의 몫이다’라고 일깨웠지요."
상황은 늘 바뀐다. 그리고 그 상황에 얽매이는 게 또한 인간이 아닌가. 스님은 여기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교리를 꺼낸다. 우리는 흔히 세월이 무상하다는 말을 한다. 삶의 덧없음을 아쉬워하는 마음에서 그럴 것이다. 무상이란 말에는 자못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지만 실상은 그 정반대다. 제행무상은 만물이 변해간다는 평범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있을 뿐이다. 변화를 초월하는 실체는 없다. 이런 인식이 불교의 출발점이다. 그렇다고 삶을 비관적으로 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 유한한 삶 속에서 무한한 가치를 추구하라는 당위성을 일러주는 것이다. 원각 스님은 그런 가치추구의 시작을 가족에서 찾는다.
"옷깃만 스치는 데도 삼생(三生)의 인연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하물며 가족이야 어떻겠습니까.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의 뒷받침으로 이뤄집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천륜이자 법륜입니다." 부처는 누구 못지않게 효를 강조했다. 일체의 선행과 공덕의 근본이 효라고 말했다. 이런 인연은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니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이지요. 나만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모든 갈등이 싹틉니다. ‘나’라는 존재는 ‘남’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서로 주고 받는 관계 속에서 이뤄집니다. 다시 말해 서로의 은혜가 있음으로 해서 유지되는 겁니다."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아껴주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자 한 마디 말도 가려서 해야 마땅하다는 충고이다.
"구시화문(口是禍門), 즉 입이 화의 문이라고 했습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말에 애정과 자비가 담기지 않으면 곧 악담이 되고 맙니다." 수행자는 날마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을 외운다. 말로 비롯된 허물을 참회하기 위함이다.
각 스님의 말에서 불현듯 상총(常總) 선사와 소동파(蘇東坡)의 법거량이 떠오른다. 상총 선사는 임제가풍을 크게 진작시킨 납자이며 소동파는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자부한 북송의 대문장가이자 관료였다. 둘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법거량은 상총선사의 물음으로 시작됐다.
"처사의 성이 무엇인지요?"
"칭가(秤哥) 라고 합니다."
"하고 많은 글자 중에서 어찌하여 저울대 칭자를 쓰나요?"
"천하의 도인들을 저울질하고 다니는 처사라서 칭자를 씁니다."
상총선사는 갑자기 "억!", 하고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곤 물었다.
"이 소리는 몇 근이나 됩니까?"
천하의 소동파도 그만 거기서 꽉 막히고 말았다. 소동파의 사죄와 참회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용서는 상대로 하여금 새롭게 태어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본디 적이 없습니다. 상대의 잘못을 용서하니 적대관계의 인과가 성립될 리 없지요. 마음이 옹졸한 사람에게는 바늘 하나 세울 곳이 없는 법이라고 옛 조사들은 가르쳤습니다." 스님은 그 말 끝에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정신이 아쉬운 세상이라고 덧붙인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뿐 아니라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길 가의 이름없는 풀 한 포기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곧 동체자비가 아니던가. 이해와 용서는 인간관계를 회복시키는 지름길이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다. 그런 마음이 우리의 모습을 작은 데서부터 바꾸는 선업(善業)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원각 스님은 미소로 말하고 있다.
lkc@hk.co.kr
■ 원각스님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출가 전 원각 스님의 화두나 다름 없었다. 오죽하면 대학입학 시험을 앞두고 ‘내가 합격하면 다른 학생이 떨어질 텐데…’라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까지 했을까. 급기야 스님은 하동의 집을 떠나, 지금은 없어진 해인사 중봉암을 찾았다. 산사의 생활에 익숙해져 갈 무렵 한 스님과 얘기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됐다. 그 스님은 "선과 악을 모두 버려야 올바른 선의 세계를 볼 수 있다"고 들려주었다. 그런 하룻밤의 과정이 원각 스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잠자던 불심에 불을 지핀 것이다. 무엇보다 기쁜 일은 중봉암에서 장래의 은사가 될 혜암 스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통도사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혜암 스님은 까까머리 고등학생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 출가를 허락하고 상좌로 받아들였다. 고향의 부모는 입대 영장을 받고 귀가한 스님을 보고 출가한 사실을 알게 됐다.
스님은 영락 없는 선방 수좌다. 절 집 이력서에 채워넣을 그럴듯한 소임을 맡은 적이 없다. 그렇게 전국의 선방을 찾아 수행에만 전념한 것이다. 은사의 강권으로 거창 고견사 주지살이를 한 10년 하기는 했다. 해인총림의 유나 소임도 법전(法典) 종정의 지시를 거스르기 어려워 맡게 된 것이다.
"팔만대장경을 보존하고 있는 장경각 주련(柱聯)에 ‘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원각도량하처 현금생사즉시) 라는 게송이 있습니다. ‘깨달음의 도량이 어디메뇨, 지금 나고 죽는 이 세상이 바로 거기로다’는 뜻이지요." 스님은 이 게송을 좋아한다. 마음이 깨끗해지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극락임을 밝힌 게송이 스님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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